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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조달 진입장벽에 막힌 스타트업…손놓은 박춘섭 조달청장

공공조달 진입장벽에 막힌 스타트업…손놓은 박춘섭 조달청장

기사승인 2018. 01. 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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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용역 참가자격서 실적 제한 거는 위법행위 묵인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문재인 국정과제에 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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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섭 조달청장
조달청이 공공기관의 입찰 위법 행위를 방관해 스타트업들이 공공 조달시장 진입에 애를 먹고 있다. 소규모 용역 입찰에서 참가 자격으로 실적 제한을 두는 사례가 속출하는 데도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이 국정 과제인 문재인 정부에서 박춘섭 조달청장이 스타트업 육성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 종합 전자 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25일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게시한 ‘2018년 웹진 및 뉴스레터 제작 용역’ 입찰 공고문을 보면 참가 자격에 ‘최근 10년 이내 단일 건으로 9000만원 이상의 웹진 또는 뉴스레터 제작 용역을 완료한 전문 제작 업체’라고 적혀 있다. 거래 건당 9000만원 이상의 실적이 없으면 참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사업의 전체 예산(9460만원)에 육박하는 실적 조건이다.

온라인 출판 분야만의 일이 아니다. 디자인·번역·행사·홍보 대행 등 용역 사업 입찰 과정에서 스타트업들의 진입 기회가 박탈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26일 올라온 ‘2018년 경기도 홍보 컨설팅 용역’ 입찰 공고문을 보면 ‘최근 10년간 홍보 컨설팅(대행 포함) 단일 건 5000만원 이상 실적이 있는 업체’라는 참가 자격이 명시돼 있다. 총예산은 1억2000만원이다.

그러나 전체 사업 예산이 2억1000만원 미만이면 관련 법상 입찰 참가자의 자격을 제한할 수 없다. 지방 계약법 시행령 제20조와 국가 계약법 시행령 제21조에 따르면 특수 기술이 요구되는 용역 계약 시 수행 실적으로 입찰 참가를 제한하려면 계약 추정 가격이 기획재정부 장관 고시 금액(2억10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두 시행령은 정부가 공공 조달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는 취지로 개정한 법안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와 경기도의 사업 예산이 각각 9460만원, 1억2000만원에 불과한 데도 실적 제한을 건 점을 고려하면 법령을 위반한 셈이다.

이는 조달 통계 수치로 반영됐다. 조달청이 24일 발표한 조달 사업 통계를 보면 내자(국내 생산 물품·서비스) 경쟁 계약에서 제한 경쟁 비율은 2017년 누적 기준 39.3%(10조3435억원)로, 2016년 39.0%(9조4676억원)보다 0.7% 상승했다. 실적 제한 등 입찰 참가 자격을 내건 계약 비중이 되레 커졌다는 뜻이다. 정부 조달 정책의 실효성이 없다는 방증이다.

입찰 참가 자격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또 다른 걸림돌이 있다. 경영 상태 평가다. 계약 제안서 평가 항목에 기업 신용등급 조건을 내건 경우 스타트업이 참가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타트업들은 초기 비용 투자로 적자를 내거나 자본 잠식 상태인 경우가 많아 채무 상환 능력이 좋을 리 없다. 적자거나 자본잠식 상태여도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이 높으면 코스닥 상장을 허용해 진입 장벽을 파격적으로 낮춘 코스닥 시장과 대조된다. 2011~2016년 6년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온 벤처기업 카페24는 성장성 중심 가치 평가를 통해 2월 8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다.

조달청의 재무 평가 기준은 기업 규모와 가치에 상관없이 엄격하다. 일반 용역 계약의 경우 신용 등급 CCC+ 이하에 최하 점수를 준다. 평점을 깎이지 않으려면 A- 이상이어야 한다. 협상에 의한 계약은 BBB0 미만부터 차등적으로 삭감된다. BBB-·BB+·BB0·BB-등급은 5%, B+·B0·B-는 10%, CCC+ 이하는 30% 깎인다. 스타트업이 재무 평가에서 감점되지 않긴 어렵다. 최근 10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한 대기업 동국제강이 2017년 12월 말 2년 반 만에 BB+에서 BBB-로 상향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공공 조달시장에서 용역 서비스 분야는 연 매출 수십억원 이상의 일부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소규모 기업이거나 초기 스타트업은 진입할 수 없는 구조다. 이미 시장에서 자리 잡은 일정 규모 이상의 중소기업에만 참가할 기회가 주어지는 꼴이다.

스타트업 업계는 공공 조달시장에서 내거는 입찰 참가 조건이 소기업들의 진입을 막는 공정 경쟁 저해 행위라고 지적한다. 홍보 대행사 라이징팝스 김근식 대표는 “단일 거래액 3000만원을 넘기 어려운데 그 이상의 금액을 조건으로 거는 것은 시장에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라며 “기존 참가했던 기업들만 기회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번역 업체 대표는 “입찰 참가 기회를 공평하게 주려면 실적 제한을 걸 게 아니라 샘플 테스트나 직전년도 매출액, 수주 건수, 세금계산서 건수를 따져야 한다”며 “나라장터에 올라온 입찰 공고문을 살펴보다가 참가할 수 있는 게 없어 공공 조달시장 진입을 포기했다”고 분개했다.

조달청은 공공기관이 직접 발주한 경우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공공기관에서 조달청에 요청한 입찰 건은 관련 법령에 맞는지 검토한다”면서도 “수요기관이 나라장터에 자체 발주한 경우 법령을 지키지 않더라도 조달청이 간섭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관련 민원을 넣거나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조달청은 개입 권한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해왔다”며 “수요기관의 책임으로 전가하기에 급급할 뿐 문제 해결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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