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지명 분쟁땐 ‘병행 표기’…‘일본해’ 갈수록 설득력 잃어

<3>동해 표기문제

김지성 기자|2008/08/28 14:47
지난 24일 중국이 베이징올림픽 폐막식 영상에서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한 지도를 전세계로 송출해 파문이 일었다.

국내 네티즌들은 '노골적인 반한감정의 표출'이라며 반발했고, 다음날인 25일 외교통상부는 중국측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세계 대다수 국가가 사용하는 것을 참고해 표기했다"고 답했다.

우리로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답변이지만, 실제로 중국정부가 발간하는 대부분의 지도에도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 중국의 일본해 표기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지금까지 지속돼 왔다.

문제는 일본해 표기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친강 대변인의 강변처럼 전세계의 세계지도 4개중 3개는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는 게 외교통상부의 조사결과다. 전세계 지도에서 '동해'표기를 되찾은 일이 간단치 않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위성사진으로 본 한반도와 동해
현재 동해 표기문제의 주도권은 일본이 쥐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일본해라는 명칭을 훨씬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동해 표기문제를 국제기구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해 표기를 관철하겠다는 복안이다. 반면 일본은 국제기구를 통한 논의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9차 지명표준화 회의에서 일본 대표단은 "지명표준화 회의가 동해표기 문제를 논의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일본은 동해 표기문제를 놓고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명칭인데 한국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는데, 이는 국제기구를 통한 논의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일본해 단독표기 국제사회 설득력 떨어져
동해 표기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조용한(?) 외교에 대해 한국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관건이지만 결국 동해 표기가 국제사회에 정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는 국제사회에서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에 대한 공감대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외교통상부 조윤수 부대변인은 "동해 표기문제를 국제사회에 처음 제기했던 지난 1992년에는 동해 병기 지도가 1%에도 못 미쳤지만 그동안 노력의 결과 이제는 24%에 육박하고 있다"면서 "일본측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동해 표기문제를 부각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외교통상부는 전세계지도 중 동해를 병기하고 있는 비율을 23.8%로 파악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황성준 연구위원도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제제기가 공감을 얻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에서도 일본해 단독표기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국제여론도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것이라면 명분을 갖고 있는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엔 지명표기 분쟁시 병행표기 권고
일본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된 것은 1929년 개최된 국제수로기구의 창립총회가 기점이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국제수로기구 총회에 참가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국제수로기구가 일본측의 주장을 반영해 동해를 일본해로 첫 공식 표기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 초판을 발행했다.

이후 1953년 개정.발간된 '해양과 바다의 경계' 3판에서도 전쟁 중이던 한국이 참석하지 못한 가운데 '일본해 표기'가 유지되면서 국제사회에서 공식명칭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정부가 '일본해 표기는 일본 식민주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 유엔의 1974년 결의안은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돼야 한다는 또 다른 근거를 제공했다.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는 "명칭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을 경우 해당 국가에서 사용하는 명칭을 모두 표기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에 근거해 우리 정부는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를 주장했고 이를 공론화 하는데 성공했다.

◇동해 표기는 국가 정체성의 문제
한국정부는 1991년 유엔 가입 직후인 1992년 유엔지명표준화 회의를 시작으로 '동해 표기'문제를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제기해 왔다. 또 주재 대사관을 통해 각국의 교과서 및 세계지리 표기에 있어 '동해 병행표기'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도 외무성에 전담반을 두는 한편 유엔의 권고를 외면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일본해 단독표기 유지에 골몰하고 있다. 지명표기가 독도문제와 같은 영토의 문제가 아님에도 한.일 양국이 외교력을 집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황성준 연구위원은 "국가적인 정체성 또는 자존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반대로 동해로 단독표기 된 상황을 예상해 보면 일본 정부도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입장에서는 동해표기를 인정하는 순간 '일본해=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한국의 논리를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쳐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한.일 양국은 내년 6월 열릴 국제수로기구 특별총회에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5년 주기의 국제수로기구 총회가 기간을 앞당겨 2년 만에 열리는 것은 사무국 확대 등 국제수로기구 개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일 양국의 관심은 국제수로기구가 50여년 만에 개정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 4판 초안의 결정에 모아져 있다.

오는 10월경에 확정될 '2009년 국제수로기구 총회 의제'에는 한.일 양국간 분쟁으로 논의가 중단된 '해양과 바다의 경계' 4판 발행문제가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한ㆍ일 양국간 한치의 양보 없는 외교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국제수로기구도 한ㆍ일 양국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급한 상황이다. 한.일 간의 합의가 안 돼 '해양과 바다의 경계' 4판 발행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성준 연구위원은 "해양환경이 바뀌었으니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0년대부터 있어왔다"면서 "국제수로기구 이사진도 임기 내에 개정판을 발행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명표기의 원칙은 그 명칭이 얼마나 오래 불려 왔는가와 현재 해당 지역사람들이 어떻게 부르고 있느냐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1500년 이상 불린데다 남북한 7000만명이 현재 부르고 있는 '동해'의 표기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주장은 동해 단독표기가 아닌 일본해와 병행표기를 하자는 것이어서 설득력이 크다.

실제로 일본 외무성의 조사에서도 2000년 3%에 불과했던 동해 병행표기가 2005년 18.9%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내년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동해 병행표기가 결정될 수 있다는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지난해 국제수로기구 총회에 참석했던 한 당국자는 "회원국들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일본해의 단독표기를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국제사회의 공감대 확산과는 별도로 일본측의 치열한 로비가 실제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을 낳았다.

이에 국제기구를 상대로 한 지속적인 설득과 함께 각국의 교과서.지도 발행기관과의 폭넓은 소통을 통해 동해 표기의 빈도를 높이는 외곽 작업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 서양 고지도 조사 통계

구분

USC대학

프랑스국립도서관

서울역사박물관

개인소장

동해

16세기

 

 

1

 

1

17세기

1

8

3

 

12

18세기

101

58

23

8

190

19세기

32

1

5

2

40

20세기

 

21

 

 

21

무연대

 

21

8

5

34

소계

134

109

40

15

298

일본해

16세기

 

 

 

 

 

17세기

 

6

 

 

6

18세기

 

2

5

1

8

19세기

12

 

22

17

51

20세기

 

5

11

 

16

무연대

 

5

4

19

28

소계

12

18

42

37

109

출처: 이상태 <서양고지도에 나타난 동해표기에 관한 연구> 2004. 발췌


# 전세계 지도의 '동해'와 '일본해' 표기

일본해 단독표기        76%

동해/일본해 병기       23.8%

기타(무표기 등)         0.2%

출처: 외교통상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