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는 무장독립투쟁의 기지
안중근 장군, 연해주 '동의회' 소속으로 단원 12명과 왼손 무명지 끊고 결의
최영재 기자|2014/08/13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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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20세기 초반 20만명이 넘는 재외 한민족의 최대 거주 지역이자 민족사회가 형성된 곳이었다. 만주 군벌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러시아 당국이 한국 독립운동을 묵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이 모여들었다.
◇연추의 항일 결사, 동의회
1909년, 동의회 소속인 안중근 장군은 단원 12명과 함께 비밀결사체 ‘동의 단지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독립의 결연한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연추의 카리에 모여 왼손 무명지를 끊었다. 이들이 남긴 ‘대한독립(大韓獨立)’ 네 글자의 혈서가 오늘날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성명회와 13도 의군
1910년 의병부대인 13도 의군이 조직됐다. 이들의 목표는 국경을 넘어 국내로 진공해 일제를 몰아내는 것이었다. 13도 의군은 산하에 창의군과 장의군 등 2개 부대를 뒀다. 창의군 총재는 이범윤이 맡고, 장의군 총재는 이남기가 맡았다. 이 부대들은 도총재 유인석의 직접 지휘로 전투 훈련에 매진했다.
13도 의군의 유인석·이범윤·이상설 등은 ‘합병조약’ 무효선언을 위해 성명회를 조직했다. 선언서에는 8624명의 서명을 첨부해 독립의지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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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본부를 둔 ‘권업회’가 창설됐다. 초대 회장은 최재형, 부회장은 홍범도였다. 권업회의 목표는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군을 양성하고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권업회는 북만주에 ‘대전학교’라는 사관학교를 세우고 1914년에는 마침내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한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근거지로 삼아 설립된 망명정부였다. 대한광복군정부는 권업회의 이상설·이동휘·이종호·정재관 등을 주축으로 흩어져 있는 무장독립운동 단체를 모아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한 것이었다.
대한광복군 정부의 초대 대통령에는 이상설, 부통령에는 이동휘가 선출됐다. 그러나 권업회는 제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일제와 제휴한 러시아의 탄압을 받아 해체되고 말았다.
◇대한국민의회의 성립과 활동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3월 17일 항일독립대회를 갖고 이어 3월 21일 최초로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를 수립했다. 블라디보스토크·니콜스크·우수리스크 등 연해주 일대는 독립운동사에서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다.
연해주에 근거를 둔 독립군단들은 1920년 10월 만주 봉오동과 청산리 지역에서 무장독립운동 사상 전무후무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연해주 지역의 무장독립투쟁은 경신참변(1920년)과 자유시참변(1921년)으로 수 많은 한인과 독립군이 학살되는 수난을 겪었다. 이후 연해주 지역의 무장독립투쟁은 거의 괴멸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