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업무상 재해’…법원 판단 기준은?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업무상 재해, 법원마다 판결 달라
전문가들 "기존 병력이나 초과 근무 등 종합적 고려해 판단"
임유진 기자|2015/11/17 12:36
#2010년 12월 어느 날 밤.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투명 비닐봉투를 두 손으로 잡아 입에 갖다 댄 채 숨진 간호조무사 B씨(여)가 발견됐다. 부검 결과 그녀의 사인은 ‘엔플루란(전신마취제)에 의한 급성약물중독’이었다. B씨의 유족들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했다며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숨질 당시 업무에 충분히 적응한 상태였고 업무량이 크게 늘거나 업무상 예측 곤란한 변화가 발생하지도 않았다”고 판시했다.
A씨와 B씨 모두 근로 도중 입은 과로로 인해 업무상 재해를 신청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과로나 스트레스는 다른 산업재해보다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재해 인정 여부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과로에 따른 업무상 재해가 인정될 수 있는 근로시간의 기준은 고용노동부가 고시로 정해놓았다. 이에 따르면 뇌혈관 질환의 경우 발병 전 4주 동안 일주일 평균 64시간을 일했을 경우 업무와의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2012년 근무 중 사망한 한 건축설계사는 근무시간이 과로 기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직무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점이 감안돼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다.
노영희 변호사(법무법인 천일)는 “기왕증(旣往症)의 유무나 병명의 정도, 출·퇴근 기록이나 초과 근로 시간의 정도 등을 재판부가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결한다”며 “판사들이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기준이 명확하다고 말하기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서영현 변호사(히포크라산재센터)는 “과로성 재해나 유해물질 누출, 퇴행성 질환의 경우 업무와 발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근로자 입장에선 업무로 인해 병이 발생한 환경을 입증해야 하고 이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