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융공기업 평가라는 ‘분류체계’의 고장, 방치 말아야

2016/07/04 15:37

 

2014년도 금융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각각 A, B 등급을 받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015년도 경영평가에서는 조선과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성과 미흡을 이유로 C등급을 받았다. 지난달 30일 이런 보도가 나가자, 이런 사후약방문식 뒷북 경영평가 자체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더해 C등급도 성과급을 받는데 그럴 이유가 있느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그 다음날인 지난 1일 한 종편의 보도는 그런 국민들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대우조선 사태로 수조원의 손실이 불가피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금융위원회는 공공기관 평가에서 두 은행에 보통 수준인 C등급을 줬습니다. 이들 기관장들은 연봉의 30%를 성과급으로 받습니다. 책임을 묻기는커녕 상을 준 꼴입니다. 우선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1억8000만 원을 받은데 이어 올해 5500만 원을 받고, 이덕훈 수출입은행장도 지난해 1억 원에, 올해 5700만 원을 받습니다. 홍 전 회장은 지난 3년간 성과급이 3억5000만 원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 한 시민은 "자기가 일말의 책임이 있으면 스스로 반납하고 국민한테 사과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11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을 불러온 국책은행 경영자에 대한 성과급 지급이라는 일반 국민의 정의감에 반하는 성과평가체계의 문제점을 인식해서, 지난 2일 산업은행은 "홍 회장 등 4명의 등기임원의 성과급 전액을 반납한다"고 밝혔으며, 수출입은행도 이 행장 등 상임 임원 5명의 성과급 전액을 반납키로 했다고 한다. 이어서 3일 산업은행은 대우해양조선이 손실을 내는 와중에 지난해 10~12월 직원들에게 지급한 격려금 877억원 전액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일련의 부실한 성과평가와 성과급 반납 사태는 금융공기업에 대한 성과평가체제 자체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 때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비록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지만 구조조정 이외의 정책금융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면서 C 등급 평가를 정당화하는 반론도 제기되었지만 곧 쑥 들어갔다. 그런 기능수행이 11조원 이상의 구제금융의 투입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과급이 반납되고 산업은행도 대우해양조선에 대해 격려금 회수에 나서면서 금융공기업 경영평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이런 부실한 경영평가 제도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부실 경영평가를 하고 또 그 결과에 대해 언론과 시민들이 어떤 관심을 보이느냐에 따라 다시 성과급의 반납 여부와 규모를 결정할 것인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금융공기업 평가라는 분류체계의 고장을 목격하고서도 이를 방치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 말로만 국민들을 위한다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이를 외면하는 셈이다.
 

어떤 생명체에게도 분류체계의 고장은 생명 유지에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개구리가 앞에 보이는 게 뱀을 먹잇감으로 잘못 분류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를 때 일단 도망가는 분류체계(규칙)를 가지고 규칙을 따르는 행위를 한다면, 이 개구리의 분류체계는 그의 생명유지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만약 앞에 보이는 게 자신보다 작을 때 더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는 식으로 분류체계를 진화시킨다면 그 개구리는 다른 개구리에 비해 더 번성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공기업 경영평가라는 분류체계가 엉터리여서 국책은행에 국민세금으로 구제금융을 해야 할 사태도 막을 수 없다면, 당연히 이런 분류체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금융위원회의 금융감독 기능과 금융산업 진흥 기능을 분리해서 금융감독 기능을 맡는 금융감독위원회를 부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아예 정책금융을 대거 폐지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인지 엄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넓게 봐서 이것도 일종의 분류체계상에 수정을 가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누리당도 "분류체계"의 고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