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융공기업 평가라는 ‘분류체계’의 고장, 방치 말아야
"대우조선 사태로 수조원의 손실이 불가피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금융위원회는 공공기관 평가에서 두 은행에 보통 수준인 C등급을 줬습니다. 이들 기관장들은 연봉의 30%를 성과급으로 받습니다. 책임을 묻기는커녕 상을 준 꼴입니다. 우선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1억8000만 원을 받은데 이어 올해 5500만 원을 받고, 이덕훈 수출입은행장도 지난해 1억 원에, 올해 5700만 원을 받습니다. 홍 전 회장은 지난 3년간 성과급이 3억5000만 원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 한 시민은 "자기가 일말의 책임이 있으면 스스로 반납하고 국민한테 사과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11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을 불러온 국책은행 경영자에 대한 성과급 지급이라는 일반 국민의 정의감에 반하는 성과평가체계의 문제점을 인식해서, 지난 2일 산업은행은 "홍 회장 등 4명의 등기임원의 성과급 전액을 반납한다"고 밝혔으며, 수출입은행도 이 행장 등 상임 임원 5명의 성과급 전액을 반납키로 했다고 한다. 이어서 3일 산업은행은 대우해양조선이 손실을 내는 와중에 지난해 10~12월 직원들에게 지급한 격려금 877억원 전액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일련의 부실한 성과평가와 성과급 반납 사태는 금융공기업에 대한 성과평가체제 자체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 때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비록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지만 구조조정 이외의 정책금융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면서 C 등급 평가를 정당화하는 반론도 제기되었지만 곧 쑥 들어갔다. 그런 기능수행이 11조원 이상의 구제금융의 투입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과급이 반납되고 산업은행도 대우해양조선에 대해 격려금 회수에 나서면서 금융공기업 경영평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이런 부실한 경영평가 제도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부실 경영평가를 하고 또 그 결과에 대해 언론과 시민들이 어떤 관심을 보이느냐에 따라 다시 성과급의 반납 여부와 규모를 결정할 것인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금융공기업 평가라는 분류체계의 고장을 목격하고서도 이를 방치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 말로만 국민들을 위한다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이를 외면하는 셈이다.
어떤 생명체에게도 분류체계의 고장은 생명 유지에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개구리가 앞에 보이는 게 뱀을 먹잇감으로 잘못 분류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를 때 일단 도망가는 분류체계(규칙)를 가지고 규칙을 따르는 행위를 한다면, 이 개구리의 분류체계는 그의 생명유지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만약 앞에 보이는 게 자신보다 작을 때 더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는 식으로 분류체계를 진화시킨다면 그 개구리는 다른 개구리에 비해 더 번성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공기업 경영평가라는 분류체계가 엉터리여서 국책은행에 국민세금으로 구제금융을 해야 할 사태도 막을 수 없다면, 당연히 이런 분류체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금융위원회의 금융감독 기능과 금융산업 진흥 기능을 분리해서 금융감독 기능을 맡는 금융감독위원회를 부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아예 정책금융을 대거 폐지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인지 엄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넓게 봐서 이것도 일종의 분류체계상에 수정을 가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누리당도 "분류체계"의 고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