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학교 내 ‘집단 괴롭힘’ 인정하고도 고작 50만원 배상판결…소송비용도 원고 부담

최석진 기자|2016/10/14 06:07
학교 내 동급생 간의 집단 괴롭힘이 있었음을 인정하고도 고작 50만원의 손해배상 지급을 명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가해 학생에게 엄정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법원이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실무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부(재판장 김지영 부장판사)는 경기도 수원시 남수원중학교를 졸업한 A양(19)이 재학 당시 자신을 집단적으로 괴롭혔다며 학생과 학부모 등 21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의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 학생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1심 판결을 뒤집었지만 A양이 가해자로 지목한 7명의 학생과 이들의 부모 14명 중 학교 측에서 진상 조사 후 징계조치를 내린 김모양(19)과 이모양(19) 두 명에 대해서만 각 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고 부모들의 감독의무 위반 책임은 부정했다.

또 통상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된 피고에게 더 많은 소송비용을 부담지우는 관례와 달리 일부 책임이 인정된 김양과 이양에 한해 소송비용의 10분의 1을 부담하도록 하고, 두 사람에 대한 소송비용의 10분의 9와 나머지 피고들에 대한 소송비용은 모두 원고가 부담하도록 했다.

A양은 남수원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1년부터 같은 학교에 다니던 김양 등 7명으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며 2013년 11월 법원에 소를 냈다.

가해자인 김양 등은 A양의 휴대폰을 강제로 빼앗아가거나 하교 후 학원에 가지 못하게 교실이나 공원에 잡아두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조사 당시 가해학생들의 진술에서도 A양의 패딩점퍼와 후드티를 가져가 몇 달간 입고 돌려주거나 다른 급우들에게 A양과 절교할 것을 권유한 사실이 확인된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이들 중 일부 학생은 A양을 ‘걸레’라고 부르며 A양이 청소시간에 걸레를 빨고 가면 ‘걸레가 걸레를 들고간다’고 모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부 학생은 생일날 돈을 안 주고 A양에게 케이크를 사가지고 오라고 시키거나, 현금을 빼앗은 사실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집단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은 해당 학교에서 열린 학폭위에서도 명백하게 확인됐다.

남수원중학교는 2012년 4월 학폭위를 개최, 김양과 이양 두 명에게 서면사과, 피해학생 접촉금지 각서, 부모동반 사회봉사 5일의 경미한 징계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이 같은 정황에도 1심 법원은 “집단 괴롭힘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직 판사 B씨는 “교내 폭력이나 괴롭힘에 대한 수치화된 위자료 산정 기준은 아직 없지만 50만원의 배상액은 다소 납득이 안 갈 정도로 소액인 거 같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넥스트로(Next Law)의 박진식 변호사는 “1심에선 집단 괴롭힘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패소판결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원고의 청구가 인용돼 그나마 다행”이라며 “지속적으로 한 학생을 골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는 그 불법성이 심각한 행위인데도 우리 법원은 책임 인정과 손해액 산정에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기의 학생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 피해 학생으로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전 사회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빠져나갈 수 없어 성인보다 그 피해가 극심한데도 우리 법원과 학교 당국은 이러한 피해에 대해 지나치게 둔감하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앞으로도 학교폭력,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에는 손해액의 다소를 불문하고 가해자 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통하여 끝까지 응징하여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