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 20’ 정의용 브리핑에 美 각료 총출동…한반도 운전대 ‘몸값’ 실감

방미단, 백악관에서 최고위급 수뇌급들과 연쇄 회담
트럼프 당초 접견 일정 하루 앞당겨 "지금 만나자" 요청

손지은 기자|2018/03/09 15:47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지나 하스펠 중앙정보국(CIA) 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 사진 = 청와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 5시간 동안 머무르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이뤄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의 최고위급 각료 수십 명이 우리 측 브리핑을 경청하는 등 문재인정부가 잡은 ‘한반도 운전대’의 높아진 ‘몸값’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우리 방미단의 ‘백악관 5시간’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은 현지시간 오후 2시 30분부터 맥매스터 보좌관, 지나 하스펠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을 각각 만났다. 자신의 카운터파트너들과 30분 간 별도 면담을 마친 후 오후 3시 30부터 4인이 ‘2+2’ 회동을 이어갔다.
이후 3시 30분부터는 조윤제 주미대사가 합류해 정의용·서훈·조윤제 3인이 미국 각료 20여 명을 상대로 관련 내용을 브리핑했다. 미국 측에서는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매티스 장관, 맥매스터 보좌관, 하스펠 부국장,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존 설리번 국무부 차관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설리번 차관은 현재 아프리카 순방 중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대신해 참석했다.

김 대변인은 “이 모임은 원래 3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한 시간으로 예정돼 있었는데 도중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빨리 만나자’, ‘빨리 오라’는 전갈이 왔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현지시간으로 8일, 금요일에 만나기로 일정을 조정 중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만남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요청에 우리 방미단과 트럼프 대통령의 접견이 오후 4시 15분부터 시작됐다. 이 자리에도 최고위급 수뇌부 10여 명이 배석했다. 정 실장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큰 힘이 됐다.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문 대통령이 저를 여기에 보낸 것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고 드리고, 앞으로도 한·미 간 완벽한 공조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전하려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후 본격적인 정 실장의 브리핑이 이어졌고, 브리핑의 핵심 내용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전달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을 만나보니 솔직하고 진정성이 느껴졌다”며 “물론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김 위원장에 대한 판단을 미국이 받아주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김 위원장의 뜻과 함께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의 해당 발언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곧바로 “좋다. 만나겠다”고 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고, 자신의 참모들에게 “그것 봐라, (북한과) 이야기를 하는 게 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오른쪽은 조윤제 주미대사. / 사진 = 청와대
이날 백악관에서 진행된 정 실장의 언론발표도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에게 “여기까지 온 김에 한국 대표들이 오늘의 논의 내용을 한국 대표의 이름으로 이곳 백악관에서 직접 얘기해 달라”며 언론발표를 요청했다.

김 대변인은 “워낙 갑작스런 제안에 정 실장도 한국에 있는 우리 대통령에게 보고드릴 경황이 없었다”며 “그래서 그 자리에서 일단 수락하고, 현지시간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맥매스터 방에서 미국 NSC(국가안보실) 관계자와 발표문을 조율하고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후 정 실장은 청와대에 있는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문 문안을 보고했다. 김 대변인은 “이때 사용한 전화는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에 연결된 ‘시큐리티(security) 라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도청과 감청이 불가능한 비화전화(秘話電話)다.

첫날 방미 일정을 이같이 마무리한 정 실장과 서 원장은 8일(현지시간) 미국 관계자들과 조찬을 함께 하며 후속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방미단은 우리시간으로 오는 10일 오후 귀국한다. 귀국 후 서 원장은 남관표 안보실 2차장과 함께 12일 일본을 방문해 일본 정부에 방북·방미 결과를 공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