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를 빛내는 한국인] ‘우즈벡의 박항서’ 꿈꾸는 골프 감독 양찬국

정재호 기자|2018/08/23 08:20
양찬국 우즈베키스탄 골프 대표팀 감독이 대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양찬국 프로 제공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에는 태극전사들 못지않게 주목받는 지도자들이 있다. 아시아 각국에 흩어져 한국 스포츠의 저력을 전파하는 이들이다. ‘박항서(59) 매직’을 일으키고 있는 박항서 베트남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14년째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을 이끄는 박주봉(54) 감독, 라오스 야구 대표팀을 이끌고 자카르타에 입성한 이만수(60) 전 SK 와이번스 감독 등이 눈에 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국 골프의 힘을 중앙아시아로 넓히고 있는 양찬국(69) 스카이72 헤드프로 겸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겸임교수다. 지금까지 무려 1만4800번 이상의 라운드 경험과 5800명의 제자를 둔 베테랑 중 베테랑인 양 프로는 우즈베키스탄(우즈벡) 남자 골프 대표팀 감독으로 이번 대회에 임하고 있다.

“태극기가 아닌 우즈벡 국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받아 입으니 기분이 묘하다”고 웃은 양 감독은 조상들의 사연이 애절한 우즈벡에 골프 협회를 만들어 명예 회장이라는 감투를 쓰면서 이 나라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우즈벡 국가올림픽위원회(NOC)는 나라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AG에 골프 대표팀을 출전시키면서 양 프로에게 대표팀 감독 겸 코치를 제안했다.
양 감독은 “대한민국 골퍼로서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 순간”이라고 돌아보면서 “한편으로 엄중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생업을 포기하고 달려가서 훈련을 시켰다”며 수락 배경을 설명했다.

양찬국 감독(맨 오른쪽)이 우즈벡 대표 선수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양찬국 프로 제공
AG에 출전하는 4명의 우즈벡 대표선수는 양 감독이 직접 주장으로 선임한 젠야 리를 선두로 로만 텐, 첸 세르게이, K. 카나트 등으로 모두 고려인 후손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메달 가능성이 높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충 넘어갈 양 감독이 아니다. 대회 개막에 맞춰 10일 전부터 선수들을 데리고 강훈련에 돌입했다. 매일 아침 7시 타슈켄트 골프장 클럽하우스 식당에 모여 아침 식사를 하면서 훈련 일정과 내용을 알려주고 저녁 7시부터는 선수 개인별 훈련 보고와 평가를 진행했다.

양 감독은 “물론 첫 출전이라서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면서도 “훈련 라운드를 통해서 4명의 선수들 스코어가 1~3타 차로 기량이 평준화됐고 전·후반 스코어의 격차가 없어졌다. 평균 1~4언더파의 안정된 컨디션을 보이고 있어서 그 동안 AG를 석권했던 남자 골프 선수들은 바짝 긴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선전 포고했다. 이번 대회 골프 종목은 23일부터 나흘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폰독 인다 골프코스에서 72홀 스트로크 플레이 방식으로 치러진다. 양 감독은 “무덥고 습기 많은 지역의 날씨에서 4일간 경기를 치르기 위한 체력과 정신력이 경기력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일단 시작하면 플레이하는 선수 이상으로 나 역시 긴장을 하고 선수들의 스코어에 희비가 갈린다“고 했다.

한국만 벗어나면 “라면이 그렇게 먹고 싶다”고 껄껄 웃는 양 감독은 골프를 통해 우즈벡의 박항서를 꿈꾼다. 그는 “한국 골프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고 우리 동족인 고려인 골퍼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갖게 한 것이 자랑스럽다”며 “비록 작은 시작이었고 조용한 노력이었지만 이제 골프장 곳곳에서 성과가 보이고 있어 기쁘다. 우즈벡 골프의 초석을 다졌고 세계 골프계의 일원으로 등장시켰다는 자부심과 보람에 지금까지 힘들고 외로웠던 지난 2년간의 노고가 눈 녹듯 사라졌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