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글에서 배워라
2018/10/0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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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을 추구하는가. 한글을 창제한 세종에게서 배워라. 계급투쟁으로 평등사회를 구현하려 했던 레닌의 러시아, 하향평준화를 평등이라고 왜곡했던 에바 페론의 아르헨티나, 그들이 만난 현실은 어떠했던가. 세종은 달랐다. 그는 누구보다도 백성을 아끼고 사랑한 군주였지만, 양반과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나라의 곳간이 바닥나도록 식량을 풀어 민심을 끌어 모으지도 않았다. 세종의 평등사상은 오히려 정신문화에서 꽃을 피웠다. 왕족과 양반들이 귀족문화를 즐기면서 일반 백성에게는 문화혜택의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불평등 시대에 봉건사회의 정점에 있는 국왕이 온 백성의 문화적 평등을 위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기적과도 같은 경이로운 업적이었다. 한글의 이념은 인기를 뒤쫓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평등이 아니다. 사람다운 삶을 위한, 일상 속의 내실 있는 평등이었다.
민족 자주를 염원하는가. 한글에서 배워라. 건국이념인 유교의 경전과 모든 공문서를 한문으로 기록해야 했던 문화사대주의 시절, 조선이 새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중국에 대한 문화적 저항을 넘어 정치적 대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훈민정음을 극력 반대한 것이 몽매한 사대주의 때문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라의 안위에 대한 현실적 우려였을 수 있다. 세종은 그 우려를 내치지 않았다. 대왕은 훈민정음을 한문과 대립관계가 아니라 병존관계로 설정했다. 한문을 배척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에 민간분야에서 한글을 서서히 정착시켜 나갔다. 사서삼경을 언해본으로 출간하여 한문을 모르는 서민들이 유학의 가르침을 한글로 깨우칠 수 있게 이끌었다. 중국과 외교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우리의 문화로 중화제국주의를 견제한 것이다. 세종은 최만리가 물러난 집현전 부제학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둔 채 그의 이름을 청백리의 반열에 으뜸으로 올렸다. 반대자를 적폐로 내몰지 않고 도리어 포용한 것이다.
세계화를 꿈꾸는가. 한글에서 배워라. 한글의 이념은 민족 지상의 폐쇄적 도그마가 아니다. 한글의 활동무대는 한반도를 넘어선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자판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한글은 한자도 영어도 에스페란토도 따라오지 못할 디지털 시대의 최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강대국의 문화제국주의를 거부하는 한글은 장차 문화적 평등의 이념으로 21세기의 세계화를 이끌어갈 것이다. 평등과 자주와 세계화를 바라는가. 먼저 한글에서 인문정신을, 문화이념을 배워라. 한글은 이미 세계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