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북 소프트 제재 해제하고, 문 대통령 설득으로 김정은, ‘통 큰’ 결단해야”
박철희 미 아틀란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서울대 교수 인터뷰
새해, 북 비핵화, 진전과 과거 회기 분기점
미, 북에 신뢰구축 조치, 김정은 결단해야
"한국, 일본을 안보·외교·지역 전략 지렛대로 활용해야"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2019/01/0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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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싱크탱크 아틀란틱 카운슬 방문 선임연구원으로 워싱턴 조야 인사들을 두루 만난 박 교수는 이날 워싱턴에서 진행된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전제한 뒤 “미국 시민의 북한 관광 허용·미 경제인의 북한 시장조사·북한 관료 및 유학생 미국 초청 등 소프트한 제재 해제를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한·미가 조건 충족에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신뢰구축 신호가 될 수 있는 북한의 국제 조직 가입 지원 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제재를 철저하게 이행하면서도 이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비핵화에 따른 북한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신뢰구축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 북한 비핵화 협상, 문 대통령 역할과 김 위원장 결단 중요
그는 북한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와 관련, “북한이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말하는 등 남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의 정의가 다르다”며 “미국 내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북한이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핵 보유국으로서 한국을 무장해제하려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협상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미국 상황을 잘 읽고 있는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 조치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북·미 관계는 회복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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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미국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 97~98%가 북·미 비핵화 협상에 회의적이라면서도 대북 강경·유화파들이 모두 수용하는 ‘조건부 관여(conditioned engagement)’ 정책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말만 믿고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미 싱크탱크 한반도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과거 경험에 의존해 비관적”이라며 “북한의 비핵화는 한꺼번에 100% 이행할 수 없는 만큼 지나치게 많은 단계인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거부하면서도 2~3단계로 세분화해 비핵화 조치를 검증한 후 상응 조치를 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한과 미국 모두 초심이 사라지고 있고, 특히 북한은 현 상황이 견딜만하니까 더 그런 것 같다”며 “새해는 초심으로 돌아가 북한 비핵화의 시간을 단축하면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해 조건과 보상을 확실하게 제시하면서 ‘말’에 의존하지 말고 이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며 “핵심은 북한의 핵 신고와 사찰이고, 이를 위해 로드맵과 시간표(timeline)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트럼프 행정부 ‘조정되고 포괄적이면서 구체적 전략’ 부재
박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전략에 대해 “조정되고 포괄적이면서 구체적 전략이 부재하다”며 “국무부와 국방부 관리들이 너무 트럼프 대통령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 만큼 리스크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미동맹의 가장 큰 리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면서 “그는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주장하고 있고, 지난해 합의에 실패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이 자신의 요구대로 관철되지 않으면 철수도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부 장관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대한 방어망을 형성했지만 사퇴 이후 매우 약화됐다”며 “미국 정치 시스템상 대통령이 결단하면 의회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워싱턴 조야 초미의 관심사는 ‘트럼프 리스크’ 관리”라면서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확답을 최우선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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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계뿐 아니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정·관계에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박 교수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대등 균형적 동맹이지만 미 전략상 차이가 있다며 미국이 주일미군은 철수할 수 없지만 한국전쟁과 지미 카터 행정부 때 보듯 주한미군은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한미동맹은 한반도 전쟁 억제가 가장 큰 목적인 사실상 국지적 성격의 방어 동맹이지만 미일동맹의 경우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이라면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한반도가 무너지지만 주일미군 철수는 미국의 서태평양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절대 뺄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와 미 싱크탱크 내에서 주한미군 주둔은 한국인의 선택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내에서도 철수 또는 감축을 수용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 한국, 일본을 안보·외교·지역 전략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박 교수는 “한국은 일본을 양국 관계로만 보고 그것도 과거사와 독도 문제가 중심이기 때문에 일본을 지정학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관점이 부재하다”며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국이 안전보장·외교·지역전략의 지렛대를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일 관계 갈등이 초래한 전략적 손실과 관련, “일본이 한국 안보의 안전판”이라고 전제한 뒤 “한국 국방력이 크게 강화됐고, 한미동맹이 튼튼하므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도움 없이도 문제가 없다는 환상이 있다”며 “주한미군은 육군이, 주일미군은 해군·해병대가 각각 주력이기 때문에 합쳐져야 종합 전력을 발휘할 수 있고,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병참기지·후방지원 기지 역할을 해야 방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이 있지만 일본의 적극적 도움 없이는 전쟁 수행이 어려운 상황은 한국전쟁 당시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 내에서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개입해 한국을 장악하려 한다는 불안이 있다”면서 “이보다 더 큰 위험은 일본의 전략적 방기로 이는 안보의 안전판을 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한·일이 손을 잡으면 대미·대중 등 외교 지렛대가 강화된다고 말했다
한·일이 미국과의 방위비·무역 협상 등 이슈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면 ‘일대일’보다 유리한 협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중·일 외교 현황과 관련, “우리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 중국은 한국을 계속 한 수 아래로 보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 손을 잡아 한국이 고립되고 있다”며 “우리는 일본을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해야 하는데 버리려고만 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한·일 관계 강화가 한국의 유럽·인도·동남아·유엔 등 전 세계 전략에도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일본의 한국 피로감, 돌이킬 수 없는 상태”
박 교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을 갖지 않는 등 두 정상 간 관계에서 보여주듯 한·일 정부 모두 상대국을 ‘전략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며 특히 일본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그는 도쿄(東京)를 방문할 때마다 만나던 일본 주요 인사들이 면담을 거부하고, 일본을 방문한 미국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가 “일본 조야에 한국에 대한 피로감이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면서 “한국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말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