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딸 구하려 죽도 든 아버지 ‘면책적 과잉방위’ 인정…무죄 선고

최석진 기자|2019/09/30 15:41
검도 대회에서 양 선수가 죽도를 맞대고 코등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 /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위험에 빠진 딸을 구하기 위해 죽도를 휘둘러 상대방을 다치게 한 아버지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오상용 부장판사)는 특수상해, 특수폭행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48)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행동은 모두 피고인 딸에 대한 위협적 행동이었다”며 “지병으로 몸이 좋지 않은 피고인은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피해자가 술에 취했고 정신질환까지 있다는 말을 듣고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죽도로 방위행위에 나아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제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부상 정도 등을 보면 피고인이 죽도로 가격한 행위가 사회통념상 타당성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야간에 딸이 건장한 성인 남성 등에게서 위협당하는 불안스러운 상태에서 공포, 경악, 당황, 흥분 등으로 저질러진 일로 판단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9월 24일 자신의 건물 세입자인 이모씨(38)와 이씨의 모친 송모씨(64)를 1.5m 길이 죽도로 때려 각각 전치 6주·3주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집에서 자고 있던 김씨는 자신을 부르는 딸(20)의 비명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 보니 현관문 밖에서 이씨가 자신의 딸(20)의 팔을 잡고 욕설을 하고 있었다.

이후 김씨가 뛰쳐나가려하자 이씨의 모친 송씨가 현관문을 막아서며 “우리 아들이 잘못했다. 아들에게 공황장애가 있다”고 말하며 김씨를 말렸다.

놀란 김씨는 현관에 있던 죽도를 들고 밖으로 나와 이씨의 머리를 가격했고, 송씨가 이씨를 감싸 안은 뒤에는 송씨의 팔을 여러 차례 때렸다.

이 과정에서 넘어진 이씨는 갈비뼈가 부러졌다. 결국 김씨는 이씨에 대한 특수폭행치상과 송씨에 대한 특수상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단은 김씨의 행동이 형법 21조 3항에서 정한 ‘면책적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만장일치(7명)로 평결했다. 또 배심원단은 이씨의 갈비뼈 골절 부상도 김씨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는 데 모두 동의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배심원단의 의견을 반영해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형법 21조(정당방위)는 1항에서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 부당한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한 행위는 비록 폭행, 상해 등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라도 위법성이 조각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2항에서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 방위행위가 상당성을 벗어난 경우(이른바 과잉방위)에는 책임 감면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조 3항은 ‘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 특수한 상황 하에서 일어난 과잉방위의 경우 책임을 조각시켜 처벌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