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시위에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 전격 사임…향후 정세는?
경제규탄 시위서 종파적 통치체제 폐지까지…
시위대 "대통령·국회의장 모두 사퇴해야"
성유민 기자|2019/10/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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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전날 생방송 TV 연설을 통해 시위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하리리 총리는 사임서를 제출하기 위해 대통령 궁으로 향하기 전 “나는 막다른 길에 부딪혔다. 상황을 타개하려면 큰 충격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리리 총리의 사임 의사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총리직 사임을 거부하고 총리에게 새 내각구성을 요청하거나 총리를 다른 부처의 임시 수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 또는 새로운 총선을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반정부 시위대는 경제 상황 타개와 함께 종파적 통치체제의 폐지도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는 지도자들이 국내 문제보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강대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번 시위를 내전 이후 고착화된 정치 체제를 종식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사퇴를 재차 요구하는 등 개혁정부를 향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레바논의 정치는 종파 노선을 따라 분열됐다. 1990년까지 15년간의 내전 기간 약 12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전쟁 중 주도권을 장악한 군벌이 정부 고위직을 맡아왔다. 레바논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지 않은 아랍국가로 여러 종파를 인정하기 때문에 종파 싸움에 따른 정치적 통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해 기독교·이슬람교 출신 의원에 각각 같은 의석수를 보장하지만 각 종파를 지지하는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하리리 총리 역시 재임 기간 내내 미국과 사우디로부터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를 통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2017년 총리 사퇴 발표 및 번복 때도 헤즈볼라에 대한 통제가 너무 약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사우디는 하리리 총리와 그의 수니파 이슬람 정당을 지지하지만 이란은 시아파 헤즈볼라를 밀어줘 레바논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은 멈출 줄 모른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리의 사임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새 시대를 마련하기 위한 발판으로 작용할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레바논 출신 대서양협의회 연구원인 앤소니 엘구시안은 “이번 사건(총리 사임)은 놀랄 만한 단기적 성공”이라며 “시위대가 개혁을 지속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