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된 적 없는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 최초 공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공개

오성환 기자|2019/11/28 16:04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조사지역 전경. /제공=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조사지역 고분 현황(위 가운데가 39호분, 아래 왼쪽에서부터 62,38,63호분) /제공=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63호분 봉토 축조 모습. /제공=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63호분 봉토 표면에 점토를 바른 모습과 호석이 노출된 모습. /제공=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63호분 매장주체부 뚜껑돌 모습./제공=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39호분 봉토 축조 모습. /제공=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39호분 남동쪽 큰항아리 노출 모습. /제공=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39호분 매장주체부 축조 모습. /제공=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28일 도굴된 적 없는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날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Ⅱ군 39호분과 주변 고분(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일원)’의 발굴조사 성과와 도굴 흔적이 전혀 없이 온전히 발견된 63호분 매장주체부의 뚜껑돌을 들어 올리는 개방 모습 현장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묘역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사적 제514호) 내 미정비지역(목마산성의 남서편 구릉부분)에 대한 학술 발굴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2014~2015년 조사에서는 5세기 중반경의 봉토분(封土墳) 9기, 돌덧널무덤(석곽묘) 15기 등 총 24기의 고분을 조사했다. 벽에 나무기둥을 세워 축조하는 방식, 봉토가 서로 가까이 축조되는 연접방식 등을 확인한 바 있다.
2016년부터는 5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분군의 동쪽 제일 상단부분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대형 봉토분인 39호분(지름 27.5m)을 중심으로 63호분(봉토 지름 21m)과 소형분(봉토 지름 약 8m)인 38호분, 62호분의 봉토분 4기를 확인했다.

이중 63호분은 과거에 한번도 도굴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확인됐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는 25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는데 이렇게 도굴된 흔적 없이 깨끗한 상태로 발견된 것은 63호분이 최초다.

63호분 바로 위에 위치해 있으면서 나중에 축조된 39호분 봉토에 가려져 있어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덤 위에는 길이 2m의 편평한 뚜껑돌 7매가 얹혀져 있고 점질토로 밀봉된 상태였으며 매장주체부의 내부에는 시신과 부장품을 매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당시 모습대로 남아 있었다.

카메라를 투입해 내부를 살펴본 결과 현재 다수의 토기들이 보이는 상태로 추가적인 유물도 기대되는 상황이며 28일 오전 뚜껑돌을 들어 올리는 장비를 동원해 처음으로 내부를 살펴봤다.

봉토의 표면 등에는 점토덩어리를 바른 흔적이 온전히 남아 있고 호석이 노출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비화가야인의 장송의례와 고분 축조기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에서 세 번째로 큰 고분인 39호분은 고분군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빗물 등으로 인한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중심부는 점토로, 가장자리는 흙으로 쌓았고 봉분을 쌓는 단계마다 점토를 깔았다.

이런 기법은 울산 약사리유적 등 고대 제방유적에서도 잘 나타난다. 남동쪽 호석 가까이로 2m 간격마다 큰 항아리를 놓았는데 이처럼 한쪽에만 집중적으로 의례용 토기를 놓는 사례는 최근 경주 쪽샘 44호분에서도 확인돼 주목받고 있다.

39호분은 1.5m 길이의 큰 돌을 세우거나(양 장벽과 남단벽), 눕혀서(북단벽) 매장주체부의 네 벽을 만들었다. 이와 유사한 구조가 성주 성산동고분군 등 대구·경북지역과 일본 나가노의 키타혼죠(北本城) 고분 등 나가노, 후쿠오카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어 당시 비화가야와 주변국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있는 소형분인 62호분에는 400여 점의 유물이 이미 출토됐다. 양쪽에 잔이 달린 토기와 6개의 잔이 달린 등잔형토기, 주전자형 토기와 같이 특이한 모양의 토기가 발견됐다.

이러한 상형토기는 주로 가야와 신라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지만 창녕에서는 처음 출토된 형태다. 큰 토기 안에 작은 토기를 넣고 같은 종류의 토기를 위아래로 포개거나 열을 지어 놓는 등 다양한 매납 방식도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의례, 출토유물 등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비화가야의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은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야문화의 실체 규명을 위하여 기초연구, 발굴조사, 유적 정비, 문화재 지정과 세계유산 등재 등 기반 조성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