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40주년 이랜드, 2평 옷가게 ‘잉글랜드’서 연매출 9.5조 그룹까지

스파오 등 자체 브랜드 육성 결실
115개 법인 거느린 유통사로 성장
박성수 회장 공격적인 M&A 전략
몸집 불렸지만 '유동성 위기' 직면
티니위니 등 매각 카드로 부채 극복
전문경영인 내세워 세대교체 포석

이선영 기자|2020/02/11 06:00
‘눈있는 사람이 놀라는 가게’. 1980년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이화여대 앞 2평 남짓한 보세 옷가게 ‘잉글랜드’을 열고 내세운 광고 문구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이 패션 사업을 시작한 건 졸업 즈음 온몸에 힘이 빠지는 희귀병인 ‘근육무력증’에 걸려 취업할 시기를 놓치면서다. 광고 문구처럼 잉글랜드는 당시 패션 트렌드와 다른 원색 계통의 화려한 옷들을 판매했다. 이 옷들이 인기를 끌자 인근 옷 가게에서도 박 회장이 판매하는 의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의 성공은 ‘이랜드’ 법인 설립으로 이어졌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 작은 가게는 25개의 국내법인, 90개의 해외법인을 거느린 국내 대형 패션유통기업 ‘이랜드그룹’으로 성장했다.

박 회장이 이랜드를 창업하고 초기 유지했던 전략은 ‘자체 콘텐츠(브랜드) 육성’이었다. 외국 유명 브랜드를 수입하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지만 해외 진출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이랜드는 1980년대 ‘브렌따노’, ‘언더우드’, ‘헌트’ 등의 브랜드를 선보였다. 특히 1989년 출범한 헌트는 국내 캐주얼 브랜드 중 최초로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기도 한 브랜드다. 1990년대에는 ‘로이드’, ‘쉐인진즈’, ‘스코필드’, ‘로엠’, ‘티니위니’ 등의 브랜드를 론칭했고, 2000년대 ‘후아유’, ‘애블린’, ‘스파오’, ‘미쏘’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도 국내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다수다. ‘헌트’, ‘스코필드’ 등은 현재는 국내에서는 브랜드를 철수했으나 각각 중국과 스코필드에 진출한 이후 해외에서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랜드월드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6조1367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 4299억원, 순이익 1184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내부 매출과 세금 등을 포함한 외형 매출만 놓고 보면 그룹 매출은 9조5000억원에 달한다. 유통사업부에서 5조원, 패션사업부(중국 포함)에서 3조5000억원, 호텔·레저·외식 등 기타사업부에서 1조원 등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랜드그룹이 40년 만에 연매출 10조원에 달할 만큼 성장한 건 의류 브랜드 등에 대한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 덕분이다. 대상은 패션 외에도 백화점, 리조트 등 다양하다. 이랜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기도 했다. 오너인 박 회장이 빠른 결단을 내리면서 M&A에도 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다.

이랜드는 2000년대 M&A계의 ‘큰 손’으로 불렸다. 당시 경영난에 허덕이는 기업들을 인수한 뒤 회생시키는 모습을 잇따라 보였기 때문이다. 이랜드의 첫 M&A는 1995년 영국 의류 브랜드인 글로벌롤 인수였으나 본격적으로 M&A 승부사로 떠오른 건 2003년부터다. 이랜드는 당시 법정관리 중이던 뉴코아(현 이랜드리테일)를 6300억원에 사들였고, 이랜드리테일은 2018년 연간 매출 규모가 2조2000억원(외형 매출 기준 4조3000억원)에 달하는 도심형 아울렛 체인으로 성장했다.

이 외에도 해태유통·태창(2005년), 한국 까르푸·삼립개발(2006년), 한국콘도(2009년), 엘칸도(2011년), 이탈리아 브랜드 코치넬레(2012년), 케이스위스·사이판PIC(2013년) 등 50여개의 패션 브랜드와 레저 사업부를 인수했다.

박 회장은 인수한 이후 다시 매각을 할 때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630억원 규모로 인수한 해태유통을 2011년 신세계에 2300억원에 매각한 것이 그 사례로 꼽힌다.

이랜드그룹이 탄탄대로만 걸어온 건 아니다. 공격적인 M&A로 몸집 불리기에는 성공했지만 차입금이 늘어나면서 부채비율도 급증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과 이랜드그룹에 따르면 이랜드그룹의 부채비율은 2013년 399%에 달했다. 자본이 늘어나는 것보다 부채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이랜드는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돌입했으나 2016년까지 부채비율은 여전히 300%를 웃돌았다. 당시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 부채가 4조원을 넘어서면서 사실상 그룹 창립 이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박 회장이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꺼내든 카드가 ‘매각’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의류 브랜드인 ‘티니위니’를 8770억원에, 홈&리빙 사업부인 ‘모던하우스’를 1700억원아 각각 매각하면서 숨통을 텄다. 이후 이랜드그룹은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내실경영으로 방향을 틀어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지속해 왔다. 400%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2018년 기준 172%까지 떨어졌으며, 지난해 기준으로는 160%까지 안정화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랜드그룹은 현재 지주사 이랜드월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구조로 구성돼 있다. 이랜드월드가 이랜드리테일(53.7%), 이랜드파크(51.02%), 이월드(12.40%), 이랜드건설(65.21%) 등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이랜드월드의 경우 박 회장이 지분 40.67%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그룹이 박 회장의 지배 하에 놓여 있는 셈이지만, 현재 박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전문경영인들에게 그룹을 맡긴 상태다. 그는 회장 직함 유지에도 “계열사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같은 체제 속에서 이랜드그룹의 인사 키워드는 세대교체와 성과주의로 꼽힌다. 올 초 그룹의 임원진에 합류한 윤성대 이랜드파크 대표(만 38세), 김완식 이랜드이츠 대표(만 36세) 등 최초 30대 상무의 탄생은 철저한 성과 위주로 운영되는 인사시스템을 보여줌과 동시에 향후 40년을 준비하는 세대교체의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랜드는 올해 역시 외형을 성장시키기보다는 내실 경영으로 방향성을 잡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패션 부문의 경우 SPA 브랜드, 유통은 아울렛, 외식부문은 에슐리 등을 지속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이랜드그룹 계열사 중 상장사는 이월드 1개사에 불과하지만 추후 추가적으로 계열사 상장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