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사모펀드, 필요악인가 ④ 전문가 지상좌담회] “급성장한 사모펀드, 규제·감독 엇박자…당국 관리 역량 강화해야”
우후죽순 생겨난 'PEF'가 시장 왜곡
급속성장 부작용 우려 목소리 확산
미국은 '불법 행위' CEO 영구 퇴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강경
오경희,최서윤,장수영 기자|2020/02/28 06:00
전문가들은 최근 사모펀드에서 발생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규제와 감독의 엇박자’라고 진단했다. 규제 완화 자체보다 그에 맞는 당국의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사모펀드는 어떤 형태로 개편 및 운용돼야 할까. 김득의 금융소비자연대 대표, 김병욱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재욱 금융투자협회 자산운용지원부장,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에게 조언을 구했다(가나다순, 이하 직함 생략).
-‘론스타 사건’ 후 금융당국은 ‘토종 자본’을 키우겠다며 규제를 완화했고, 급성장했다. 현주소를 진단해 달라.
김재욱: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제도 개선 이후 8년 동안 4배(2011년 말 108조원→2019년 말 416조원) 가까이 성장했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1월 발표된 미국 시장규모(약 1경7136조원)의 2%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저금리, 저성장 국면 지속과 대규모 자금조달이 필요한 비상장 혁신기업 증가 예상 등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그간 보여준 성장속도에 버금가는 또는 그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김병욱: 세계적으로 사모펀드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 기업가치 창출, 성장자본, 고용창출 및 기업구조조정 등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지원할 시장친화적 주체로서 사모펀드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DLF, 라임 사태 등 사모펀드 사고 발생 원인이 당국의 규제 완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성태윤: 규제 완화 이후 적절한 감독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 근본적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최초의 상품 설계가 적절한지를 판단하고, 금융시장에서 이상 움직임을 보이는지 추적하며 전반적인 위험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감독기관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김득의: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설립요건을 과도하게 완화했다. 투자자와 판매자가 대등한 정보와 협상력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정보 부족과 왜곡된 허위 정보를 통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송홍선: 사모펀드 매니저의 도덕적 해이, 개방형의 위험성이나 OEM(주문자위탁생산) 펀드 등 고객 관점의 자산관리를 어렵게 하는 시장구조와 경쟁구조, 단기성과주의, 그리고 이를 감독해 내지 못한 ‘규제와 감독의 엇박자’ 등을 종합적으로 돌아봐야 할 때다.
-토종 PEF는 국내 산업계와 자본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특히 KCGI 등 행동주의 펀드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대한 긍·부정 평가가 엇갈리는데.
성태윤: 행동주의 펀드를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 시장규율을 강화하고 투자자 권리를 증진시킬 수도 있다. 토종과 해외의 분류도 큰 의미는 없다. 토종이라 하더라도 장기 기업가치 제고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트랙 레코드(Track Record, 운영실적)를 보인다면 높이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송홍선: 행동주의펀드 중에서도 분별이 필요해 보인다. 과도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만 요구하는 주주환원전략은 근시안적이며 ESG(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투자가 추구하는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와는 구별된다.
김재욱: 우리나라 PEF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중대형 기업 중심의 바이아웃(Buy-out, 경영권 인수) 투자에서 그 범주가 점차 비상장 중소·중견기업 등에 대한 그로스캐피탈(Growth capital) 투자로 확대돼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국은 최근 공모펀드의 형식상 사모펀드 판매 차단, 투자자 보호장치 적용, 일반투자자 요건 강화, OEM 펀드 판매사 책임 및 관리감독 강화 등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송홍선: 미시적인 관행이나 규정 하나를 바꾼다고 사모펀드시장이 금방 질적으로 변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생태계 관점에서 사모펀드 매니저, 프라임브로커, 감독당국 각각에 역할과 의무, 그리고 책임을 엄격하게 부과해야 한다.
김병욱: 규제 완화에 따른 실질적인 감독정책이 필요하다. DLF 사태가 과연 시스템상만의 문제였는지, 시장감독자로서 감독관리의 역량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금융거버넌스를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득의: 금융당국의 정기적 점검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며, 불법 행위 시 영업정지 및 미국처럼 CEO 영구퇴출과 함께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금융회사 스스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소비자보호와 사모펀드 활성화라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점을 찾고, 순기능을 살리기 위한 해법은.
김재욱: 운용사는 투자자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투자자들은 자기책임 투자원칙에 입각할 때 사모펀드 시장은 더 성장하고 성숙해 나아갈 것이라 생각된다.
김득의: 일반 투자자와 전문 투자자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운용사의 요건이나, 판매사의 책임을 더욱 까다롭게 해야 한다. 힘의 균형을 위한 집단소송제나 예방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
송홍선: 규모에 따른 규제의 차등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개인 비중이 높은 대형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보고의 주기와 깊이를 달리해 투자자보호와 금융안정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김병욱: 기업의 자율성은 존중하되 그에 걸맞은 책임을 부여하고,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역량 강화를 어떻게 입법으로 담을지 고민되는 부분이다.
성태윤: 사모펀드 자체에 대한 규제보다 책임 있는 투자자가 투자하도록 하되, 금융시장의 근본 가치를 훼손하는 사안은 사법적으로 엄격하게 처리하고, 금융당국의 감독 역량과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