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 국민은행장, 동남아 발판 넓힌다…부코핀은행 경영권 확보 추진

코로나19로 인니 금융 규제 완화
최대주주 목표로 2억 달러 마련
경영권 확보땐 동남아 거점 완성

김지수 기자|2020/06/14 18:00
KB국민은행이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 인수를 추진한다. 현재 부코핀은행 2대 주주인 국민은행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현지 금융당국의 규제가 완화되자, 부코핀은행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기 위해 실탄까지 마련했다. 순조롭게 유상증자가 이뤄지면 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 경영권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 동안 허인 국민은행장이 추진해온 미얀마-캄보디아-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동남아시아 금융벨트를 완성하게 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의 지분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최근 2억 달러를 에스크로(제3자 예치) 계좌에 입금하고, 유상증자 참여와 최대주주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부코핀은행이 발행할 신주 중 27억3000만주가 국민은행에 배정될 예정인데, 이를 국민은행이 인수하면 약 51%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 지위와 함께 경영권까지 가져올 수 있게 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유상증자 가격 등 세부적인 조건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며 “현재 주가 등을 감안했을 때 2억 달러 유상증자 참여로 5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우선 마련한 자금 2억달러를 에스크로 계좌로 이체했는데, 이는 현지 금융당국에 부코핀은행의 지분을 인수할 의지가 높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다. 에스크로 계좌는 3자 계좌이기 때문에 협상 결과에 따라 지분 인수가 무산되거나 당국의 승인이 나지 않을 경우 다시 인출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현지 금융당국 및 부코핀은행, 그리고 부코핀은행의 주요주주들과 논의해야 될 절차가 많이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부코핀은행은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 1분기 자본적정성비율(CAR)은 12.59%로 전년(13.29%)보다 감소했다.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은 3월 기준 100.84%로, 100% 하한을 겨우 넘겼으며, 유동성커버리지비율도 115.67%로 전년 동기(128.43%)보다 감소했다. 유상증자가 순조롭게 추진될 경우 재무상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은 이미 2018년 7월 유상증자 참여를 통해 부코핀은행의 지분 22%를 취득하며 2대 주주에 오른 바 있다. 당시 투입한 인수 자금은 1164억원이다. 하지만 이는 경영권 확보 차원이 아닌 단순 지분 투자 형식이었다. 당시 국민은행이 지분을 22%만 인수한 것은 현지 금융당국의 외국인 지분율 규제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지분 40% 이상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현지 금융당국의 예외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황이 변했다.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지분 확대에 보다 완화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달 11일 현지 금융감독청(OJK)은 성명을 내고 “부코핀은행에 대한 자본 및 거버넌스를 강화하려는 국민은행의 계획을 환영하고 지지한다”며 “국민은행의 유상증자 추진은 인도네시아 경제 및 은행산업의 성과와 미래 성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관계자 역시 “현지 금융당국이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의 부코핀은행 투자 계획을 환영하는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의 성명서. 자료출처=/OJK
KB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면 캄보디아와 미얀마에 이은 제3의 동남아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임기 이후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한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에 박차를 가해왔다. 지난 4월에는 캄보디아 최대 소액대출금융기관(MDI)인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 지분 70% 인수를 마무리 짓는 한편, 미얀마 3차 은행업 개방에서 현지법인 설립 예비인가를 취득하기도 했다. 부코핀은행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되면, 부코핀은행의 450개 점포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진출의 확실한 거점도 마련하게 된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국민은행 재무담당 부행장 시절 BII은행(현 메이뱅크) 지분을 인수한 경험이 있는 나라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 국민은행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부코핀은행에 대한 지분 보유가 유일한데, 부코핀은행에는 단순 투자자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유상증자에 참여해 딜 클로징까지 잘 이뤄질 경우, 경영권까지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