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 찾은 여권 인사들, 의혹엔 ‘침묵’...국민청원 “피해자 억울함 풀어달라”
사이버 성폭력 대응센터 "남성 권력자 연대 견고해…당 내부서 반성하고, 피해자 입장 고려해야"
이민영,김서경,이주형 기자|2020/07/1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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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를 찾은 여권 인사들이 해당 사건과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여권 인사들의 조문 행렬…성추행 의혹에는 ‘호통·묵묵부답’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박 시장의 빈소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와 김부겸 의원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박 시장의 생전 모습을 추억하며, 심심한 애도를 표했다.
그는 자리를 뜨면서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는 해당 기자를 향해 “XX 자식 같으니”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의혹에 대한 질문에 그만하자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고, 그 외에 민주당 의원들도 의혹에 대한 대답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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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박 시장과 관련해 ‘성추행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박 시장의 시장직 박탈과 가족장을 요구한다’ 등 7건 이상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그 중 ‘박 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청원글은 게시된 지 반나절도 채 지나기 전에 1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자는 “박 시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됐는데, 그게 떳떳한 죽음인가”라며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언론에서 국민이 지켜봐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날 한 시민은 서울시청 앞 분향소 설치 현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시위자는 “고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전말을 밝혀야 한다”며 “극단적 선택으로 성추행 가해자가 영웅으로 미화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운데 시는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입장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고인이 별말을 남기지 않고 생을 마감한 이상 그에 대한 보도는 온전히 추측일 수밖에 없다”며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복되는 ‘정치권 미투’ …오늘도 ‘성인지감수성’ 부족 지적
정치권의 성추행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미투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여권 인사들이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분노하거나 침묵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 시장 사망으로 사건 본질이 변질되거나 성추행 피해자가 가해자로 비춰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를 비난하고 책망하고 피해자를 찾아내는 2차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며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시간과 사회가 이것을 들어야 하는 책임을 사라지게 하는 흐름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서울시는 과거를 기억하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승희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여당은 이 사건을 ‘말해선 안 되는 것’이 아닌 ‘당 내부에서 검토하고 반성해야 하는 일’로 바라보고,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이 (가해자인) 안 전 도지사, 박 시장 측에 보낸 조화는 남성 권력자의 연대가 견고함을 보여준다”며 “그런 행위들이 지금과 같은 사회적 맥락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 성폭력 사실을 용인하는 현실을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