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야담] ‘대한항공 인수’ 조중훈, ‘아시아나 인수’ 조원태…50년만의 데자뷔

한진그룹 조부와 손자의 代 이은 결단
국익 차원, 사운 건 승부수 '공통점'
구조조정 우려에 50년 전도 "감원 없어"

정석만 기자|2021/03/26 06:00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9부 능선을 넘어서며 세계 10위권 초대형 항공사 탄생도 눈앞에 두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항공업계가 극심한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아시아나 인수 추진은 사운을 건 승부수이자, 위기에 놓인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국익 차원의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50여 년 전 조중훈 창업회장의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이다.

25일 대한항공 사사(社史) 등에 따르면, 조중훈 회장의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삼고초려’를 넘어선 박정희 정부의 ‘사고초려’ 끝에 결정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1968년 박정희 정부는 부실공기업인 ‘대한항공공사’의 민영화 추진을 위해 여권의 재정통이던 김성곤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을 차례로 보내 조중훈 회장에게 인수를 제안했다. 세 차례의 제안을 고사한 조중훈 회장이었지만 결국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여행 한 번 해보는 게 내 소망”이라며 사업적 판단에 앞서 국가적 차원에서 인수를 권유한 박정희 대통령의 부탁에 결국 인수를 결심하게 된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은행에 갚아야할 빚이 27억원(현재 추정 가치 670억원)이 넘는 등 열악한 상황이었다. 한진그룹이 펴낸 조중훈 회장의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에는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둘러싸고 임원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동생인 조중건을 비롯한 임원들의 반대에 조중훈 회장은 “이익만 생각하는 사업은 진정한 의미의 사업이 아니다. 만인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사업이라면 만 가지 어려움과 싸워나가면서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는 게 기업의 진정한 보람이 아니겠는가”라고 직접 설득했다고 한다.
1969년 민영기업으로 재탄생한 대한항공은 이후 조중훈 회장과 조양호 회장, 조원태 회장을 거치며 현재 항공기 160대, 국제선 노선 43개국 120개 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대한항공공사 인수 당시 항공기 8대에 일본 3개 도시 취항노선에 불과하던 부실투성이 소규모 항공사에서 글로벌 항공사로 환골탈태한 셈이다.

대한항공공사 인수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2020년, 손자인 조원태 회장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대(代) 이은 결단을 내렸다. 극심한 경영난에 빠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규모의 경제로 항공산업 재편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조원태 회장은 인수 결정 당시 “많은 고민과 부담이 있었지만, ‘수송으로 국가에 기여한다’는 한진그룹의 창업이념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저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국익을 생각한 조부(祖父)의 결단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한진그룹이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통해 성장했듯 아시아나항공 인수 또한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 내고 국제 항공산업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지 주목된다. 다만 세계 10위권 항공사로 도약하는 양사의 통합 과정에서 중복 인력 등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조중훈 회장은 대한항공공사 인수 후 어떤 선택을 했을까. 조중훈 회장은 “부적격자를 감원해야 한다”는 인사책임자의 건의에 “감원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한사람도 자르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세 차례에 걸쳐 공개석상에서 직원들에게 “감원이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을 포용한 조중훈 회장의 마음이 손자에게도 닿았던 것일까. 조원태 회장도 인수 결정 이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 “어떤 부문도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수차례 단언했다. 50여 년의 시차에도 ‘데자뷔’가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