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 혜택 못 보는 프랑스 마을 78곳…이유는 긴 이름 때문

새로운 규격 신분증에 담을 수 있는 마을 이름은 최대 29자
해당 마을 주민들, 행정상 이유로 새 신분증 발급 거절당해

임유정 파리 통신원 기자|2021/11/25 14:24
지난 8월부터 바뀐 프랑스의 새로운 신분증에 마을 이름 전체가 표기가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신분증 발급이 거절되고 있다./출처=프랑스 내무부
자신이 사는 마을 이름 때문에 정부가 추진 중인 디지털 혁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프랑스에서 발생했다.

프랑스 정부는 3년 전부터 국민 신분증(한국의 주민등록증 격)의 크기를 일반 신용카드처럼 바꾸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995년부터 사용 중인 기존 신분증은 일반 신용카드 규격보다 커서 지갑에 넣고 다니기가 어려웠다. 이 제안은 국회를 통과해 올해 8월 2일부터 프랑스에서도 타 유럽 국가처럼 작아진 크기의 신분증이 발급되고 있다.

새 신분증은 현대인의 생활양식에 맞게 규격만 작아진 것이 아니라 디자인과 보안 강화에도 신경을 썼다. 새 신분증에는 기존 신분증에 없던 전자칩이 포함돼 복제를 어렵게 만들었고 소지자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다.
현지매체 프랑스3이 24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대화된 새 신분증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작아진 신분증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긴 마을 이름 때문이다. 프랑스 신분증엔 태어난 마을의 이름이 들어가는데 새 규격의 신분증에 적을 수 있는 글자 수는 최대 29자로 제한된다.

프랑스 전국에선 78개 마을이, 남서부 옥시타니주 내에서만 15개 마을의 이름이 29자가 넘는다.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시 인근에 위치한 ‘라 바끄히 에셍 마흑땅 드 까스뜨히(La Vacquerie-et-Saint-Martin-de-Castries)’나 피레네산맥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셍뜨 꼴롱브 드 라 꼬멍드히(Sainte-Colombe-de-la-Commanderie)’ 등의 마을이 대표적인 곳이다.

프랑스 북부엔 마을 이름이 38자인 곳도 있다. 영불해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셍 껑땅 라 모뜨 크화 오벨리(Saint-Quentin-la-Motte-Croix-au-Bailly)’에서는 신분증에 마을 이름 전체를 표기할 수 없다는 행정상의 이유로 주민들의 새 신분증 발급을 거절하고 있다.

이름이 29자가 넘는 마을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프랑스에서 국가신분증 업무를 담당하는 ANTS는 올해 말까지 제한된 글자 수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ANTS는 긴 마을 이름을 반으로 나눠 두 줄로 표기하거나, 전치사·관사를 없애거나, 줄임말을 써 글자 수를 줄여보는 등의 다양한 해결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도시 이름에 Saint가 들어간 경우 짧게 St.로 표기하고, 마을 이름에 le나 la처럼 관사가 포함된 경우 생략하는 방법이다. 또 마을 이름에 위를 의미하는 ‘sur’나 아래를 의미하는 ‘sous’ 등 전치사가 포함된 경우 표기하지 않는 것이다. ANTS가 올해 말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마을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