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크라이나 핀란드화와 한국의 굴욕적 대중 외교...푸틴과 시진핑

마크롱 대통령, 우크라 중립, 핀란드화 제안
우크라 나토 가입·안보 강화 불가...주권 문제
한국, 중국 사드 보복 후 '3불' 합의 등 주권 포기 행보
푸틴, 러시아 제국 건설 야망...시진핑, 봉건체제 부활의 꿈

2022/02/11 09:11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제안했다.

핀란드가 냉전시대에 엄정한 중립을 조건으로 강력한 이웃인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민주주의 국가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을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에 적용하자는 구상이다. 이는 러시아가 요구하는 안전 보장 우려 해소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무장 해제를 하자는 안이다.

이 구상을 수용하면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할 수 없고,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의 무기 공급 및 구입, 그리고 안전 보장 관련 조약을 맺지 못한다. 러시아가 이 모델을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구소련 국가로까지 확대하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에 대해 나토의 개방정책, 미국과 주권국 간 양자 협력 허용 등 핵심 가치의 문제라며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보는 것을 감안하면 ‘핀란드화’ 구상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등을 연쇄적으로 만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통화를 하는 등 광폭 중재 외교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핀란드화’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핀란드화’의 가장 큰 문제는 한 나라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는 이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러시아라는 화산 옆에 사는 것처럼 느낀다’고 토로한 것처럼 러시아의 침략 위험이 실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잃었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교전을 하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위협은 현실이다.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에 대응하는 우크라이나는 그야말로 맨손뿐이다. 주민들이 목총·화염병 훈련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고등학교와 대학에서의 교련 시간을 떠올렸다. 자녀들과 함께 훈련에 참여한 한 여성이 ‘어차피 한번 죽는다. 러시아와 대항해 싸울 것’이라며 기개를 보이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러시아가 이틀 이내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장악해 친러 정권을 세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게 서방측 관측이기 대문이다.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2000년 마늘 분쟁을 시작으로 2017년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이라는 주권 행위 때문에 중국의 가혹한 보복을 당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을 완화하기 위해 사드 추가배치 불가·미국 미사일방어체제 불참·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등 주권 포기와 다름없는 굴욕적인 ‘3불’ 합의까지 했다.

그리고 동맹이 ‘철통(Iron clad)’과 같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면서도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화산’ 같은 강대국을 이웃으로 둔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상황은 권위주의 ‘스트롱맨’의 세계관에서 비롯됐다는 측면에서 유사하다.

푸틴 대통령은 구소련에 대한 향수와 우크라이나·벨라루스·조지아를 잇는 제정 러시아 제국 건설을 꿈꾸는 야망을 가지고 2008년 미국 동맹 조지아를 침공부터 크림반도 병합, 지난달 카자흐스탄 유혈 사태 진압을 위한 러시아군 파병, 현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 위협까지 14년 동안 구소련 국가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겸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도 ‘중국몽’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를 통해 중국 중심의 봉건적 체제 부활을 꿈꾼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한국뿐 아니라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과 군사화 등으로 주변국에 강압적이다.

다만 러시아의 경우 푸틴 대통령 개인의 야망이 ‘화산’ 역할을 하지만 중국의 ‘강압’은 중국공산당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측면에서 더 지속적이고, 체계적이다. 아울러 러시아보다 더 ‘화산’ 같은 북한의 존재도 우리가 직면한 생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