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소련 해체·한소 수교 주역 고르바초프 별세...푸틴에 비판적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2022/08/31 08:23
2022/08/31 08:23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별세
냉전 종식·소련 해체·한소 수교 주역
독일 통일 수용...노벨평화상 수상
소련 해체로 사임 후 강연 활동...푸틴 비판
고르바초프 재단, 우크라 전쟁 중단·평화협상 개시 촉구
|
러시아 중앙 임상병원은 30일(현지시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심각하고 장기적인 질병으로 이날 저녁 별세했다"고 밝혔다고 러시아 타스통신 등이 보도했다.
타스는 관계자를 인용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2020년 이 병원에 입원해 요양을 계속했지만 그의 사인이 코로나19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89년 12월 냉전 종식 선언과 그해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그리고 그다음 해 10월 동서독 통일 기여 등의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
그는 집권 6년 동안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티(개방)' 정책을 추진해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선 소련의 정치·경제 체제 개혁을 시도했다. 아울러 글라스노스티 정책으로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따른 '신사고' 외교로 이데올로기 색이 강했던 소련 외교 정책을 전환했다. 그는 집권 8개월 만인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1987년 12월 레이건 대통령과 중거리핵전력조약(INF) 및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했다.
|
특히 그는 1989년 몰타에서 조지 H.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동서 냉전 종식을 선언했고, 1990년 10월 동·서독의 통일과 통일 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잔류를 수용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8월엔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에서 여름휴가를 중 일어난 쿠데타 미수 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사실상 이양했고, 그해 12월 러시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 등 소련 소속 11개 공화국이 독립국가연합(CIS) 결성을 선언하고 소련이 붕괴하자 대통령에서 사임했다.
|
그는 사임 후 '고르바초프 재단'을 창설해 해외에서의 강연과 환경보호 운동 등을 벌였다. 그는 1996년 옐친 대통령에 맞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0.5%의 득표율에 그쳤다.
그는 푸틴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비판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고, 고르바초프 재단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개시 이틀 후인 2월 26일 전투 중단과 평화협상 개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