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 떠나자 영연방서 ‘탈 군주제’ 논의 급물살

선미리 기자|2022/09/12 14:08
11일(현지시간) 호주 케언즈의 크리켓 경기장에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사진=AFP 연합
70년간 재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서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에서 군주제 폐지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점쳐진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영국 왕실과의 관계를 재편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영연방(Commonwealth)에서 활발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독립국 56개국으로 구성된 느슨한 형태의 연합체다. 이 가운데 영국을 제외하고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을 맡는 국가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총 14곳이다.
영연방에서는 이전부터 외국의 국왕이 국가 수장이 돼선 안되며,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WSJ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날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바부다는 3년 내로 공화국 전환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개스턴 브라운 앤티가바부다 총리는 "우리가 진정한 주권국가임을 확실히 하고 독립의 고리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며 군주제 폐지를 위한 투표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군주제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은 또 다른 카리브해 국가인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등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영연방 왕국'인 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서도 탈 군주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캐나다 설문조사기관인 앵거스 리드 연구소가 지난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국민의 약 60%가 영국 왕정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바베이도스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카리브해 섬나라인 바베이도스는 지난해 11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55년 만에 입헌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했다. 아울러 응답자의 절반은 다음 세대에도 군주제가 지속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에서도 공화국 전환에 대한 논의가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호주에서는 1999년 군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이후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많은 호주인들이 군주제 유지보다 공화국 전환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집권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총리직에 오르기 전부터 국가 체제를 입헌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 바꾸고 호주 원주민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앨버니지 총리는 이날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의와 존경을 표해야 할 때"라면서 자신의 첫 임기 동안에는 공화국 전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 마오리족을 위한 정당 '마오리당'이 공화당 전환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국 전환 논의는 뉴질랜드에서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전환에 찬성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3분의 1에 불과했으며 반대는 47%에 달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역시 지난해 자신이 죽기 전에는 뉴질랜드가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서도, 임기 중에는 이를 위한 조치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