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 역전승 위해 300兆 배팅…첨단 제조강국 초석 다진다
수도권·충청·경상·호남에 361조1000억원 투자
李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 후 지역 사업장 살펴
함께 미래로 걸어가자는 '동행' 철학 통큰 실천
박지은 기자|2023/03/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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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기흥-평택-용인 '반도체 삼각편대'
정부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용인에 710만㎡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 2042년까지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등 최대 150개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기흥과 화성, 평택, 이천 등 반도체 생산단지와 인근의 소부장기업, 팹리스 밸리인 판교 등을 연계한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완성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와 기존 화성·기흥·평택 사업장에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직접 투자한다. 화성-기흥 벨트는 메모리·파운드리·R&D(연구개발) 중심으로, 평택-용인은 첨단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핵심 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민관이 힘을 합쳐 '반도체 강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첫 걸음을 뗐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대만 등 세계 각국이 반도체 공급망의 자국 내 구축을 위한 정책적 지원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GDP)의 5.6%, 전체 설비투자액의 24.2%, 총 수출의 19.4%를 담당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은 "새롭게 만들어질 신규 단지를 기존 거점들과 통합 운영해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며 "대한민국 미래 첨단 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위한 글로벌 전진 기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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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에 710만㎡(약 215만평) 규모로 조성된다. 경기 남부 산업단지 사정에 밝은 지역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남사읍이 용인에 남은 마지막 산업부지였다"며 "서울과 교통이 좋고 안성시, 수원시 등과 인접한 남사읍을 삼성전자도 원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남사읍은 경기도 안성시와 맞닿아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들이 모여있는 판교와 인접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삼성전자가 용인에 파운드리 사업에 방점을 둔 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팹리스들이 모여있는 판교는 물론 수도권과 가깝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TSMC도 대만 북부 신주산업단지에 팹리스부터 공장이 한데 모인 클러스터 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위원은 또 "정부에서 통큰 지원 방안을 내놨고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사업을 빠르게 키우기 위한 타이밍을 잡은 것"이라며 "반도체 사업 성패는 타이밍이 핵심"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와 용인시의 인연도 깊다. 삼성전자는 1983년 9월 12일 기흥 1라인을 착공했고, 이듬해 3월 말 완공했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첫 번째 반도체 공장이다. 당시 18개월 이상 걸리는 공사 기간을 3분의 1이나 단축해 화제를 모았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을 살펴보면 용인은 호암이 고민했던 반도체 공장의 입지 조건에 부합한다. 호암은 "반도체 공장은 서울에서 1시간 이내의 거리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정상급 고도기술 인력의 취업이 곤란하다"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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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클러스터에 파운드리 공장이 건설돼 가동되면 TSMC와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은 기존 평택과 미국 오스틴, 건설 중인 테일러 신공장을 감안해도 생산 능력이 세계 1등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의 생산능력과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공정 수도 3배에 이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TSMC는 대만 북부 신주과학단지, 중부 타이중과학단지, 남서부 타이난과학단지에 파운드리 클러스터를 갖추고 있다. 최대 규모인 신주과학단지는 수도 타이페이와 약 40분에서 1시간 거리다. 삼성전자가 용인에 조성할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와 비슷한 성격이다. 신주과학단지 내에는 TSMC 팹 6개와 R&D 센터가 운영 중이며 협력업체, 팹리스, 디자인하우스, 소재사 등이 대거 입주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TSMC의 대만 내 최대 고객사인 미디어텍도 신주과학단지에 입주해있다. 사실상 대만의 실리콘밸리인 셈이다.
TSMC에 대한 대만 정부의 지원도 각별하다. 대만 경제 주간지 '상업주간'에 따르면 대만에 지진과 단전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국제통신사가 총통부를 제치고 TSMC부터 급히 찾는다고 한다. 극심한 가뭄으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용수가 부족하자, 정부가 인근 농민들과 협의해 저수지에 모아둔 물을 TSMC에 우선 공급하기도 했다. TSMC가 타이난과학단지에 6공장을 지을 땐 공장 부지에서 3000년 전 고대 유물들이 출토됐지만 공사를 정상 진행했다. 상업주간은 "한때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서식지 위에 첨단 공장이 세워졌다"며 "이 공장에서 밤낮없이 새로운 도전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삼성그룹은 이날 정부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발표 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투자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등 관계사들이 향후 10년 간 충청·경상·호남 사업장에 60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비수도권 투자에는 최근까지 지역 사업장을 둘러본 이재용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충청권에는 반도체 패키지 특화단지, 첨단 디스플레이 클러스터, 차세대 배터리 마더 팩토리를 조성한다. 경상권 사업장을 차세대 적층형 세라믹 콘덴서(MLCC), 글로벌 스마트폰 마더 팩토리, 고부가가치 선박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호남권은 삼성전자 스마트 가전의 핵심 생산기지로 변신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투자 계획은 '지역과의 상생', 수도권과 비교한 지역 균형 발전 차원을 넘는다"며 "대한민국의 다양한 지역별 특화 산업의 '글로벌 생산 거점' 도약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조강국 대한민국'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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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지정, 오는 2026년까지 550조원 규모의 민간주도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하자 산단 후보지로 지정된 전국 지자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던 지역 사회에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젊은 인구 유입까지 기대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내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각 지역에 골고루 투자의 씨앗을 뿌렸다는 평가도 내놨다. '산업 정책 전문가' 주대영 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각 지역의 발표 내용을 보면 실제 추진이 가능하거나 이미 진행 중인 부분들도 적지 않다"며 "현실성 높은 사업들이 대거 포함된 만큼 현 정부 임기 내에 성과를 내는 곳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