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안전 책임지는’ 울릉군 도동리 등굣길 ‘수호천사’

13년 넘게 초등학교 횡단도보 책임지는 전직 경찰관
단 한건의 교통사고 발생 하지 않아
보석같은 아이들의 안전 중요, 최선을 다할 것

조준호 기자|2023/04/02 09:45
경북 울릉군 울릉초교 앞 횡단보도에서 안전지킴이를 하는 김태열씨가 학생들이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도록 수신호를 하고 있다. /조준호 기자
"삐익, 삑, 삑, 삑"
맑은 공기를 가르고 힘찬 호루라기 소리가 도로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에 맞춰 대형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멈쳐섰다.

약 180cm 큰 키의 짧은 중절모를 쓴 한 남성이 정차한 버스를 향해 거수경례를 한 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고사리 손을 잡고 횡단보도 중간까지 건넜다.

그는 양방향으로 줄지어 정차 중인 차량의 운전자에 눈을 맞추고 미안한 마음과 지시에 따라준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지 모를 가벼운 목례를 한다. 운전자는 미소를 담은 인사를 답례한다.
지난달 31일 오전 8시가 채 안된 시간에 경북 울릉군의 도동리 울릉초등학교 앞 횡단도보의 풍경이다. 주말을 제외한 출근길엔 항상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태열(71, 울릉읍)씨. 무려 13년이 넘게 이 일를 이어가고 있다. 김 씨는 전직 경찰관이었다. 30년 동안 경찰에 몸담은 그는 주위에서 안전지킴이 활동을 권유받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벌써 이만큼 흘렀다.

그가 안전지킴이로 활동하는 울릉초등학교는 지역에서 행정과 관광 일번지인 도동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교통, 물동량이 많은 지역이다. 항만지역과 타지역으로 오가는 유일한 도로인데 유독 이 길만이 외길이다.

또 울릉군 지역에서 울릉초교 앞의 교통량을 보면 경북 대도시 초등학교와 비교해도 무방 할 정도로 차량이 많이 다니는 반면 도로는 좁고 경사지고 여러갈래의 도로가 합류하는 복잡한 도로사정이 더욱 혼랍스럽게 한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엔선 횡단보도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교통흐름과 경사진 짧은 횡단보도에 여러 갈래도로가 합류되는 복합적 구조 등의 이유로 보류됐었다.

또 초등학교가 지난해부터 스마트학교로 신축을 하며 도로 건너 폐교 후 인근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울릉중학교로 학교 업무가 이전 후 공사를 진행하면서 출근길에 공사차량과 주차된 출근 차량들이 몰리면서 더욱더 혼잡해진 상황이다.

김태열씨는 출근시간대 언제나 혼잡한 울릉초교 앞에서 수신호를 하면 교통혼잡을 해결한다. 이 때문에 학교는 물론 지역사회에서도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조준호 기자
하지만 김 씨는 경찰관을 하면서 익힌 기술과 오랜기간 안전지킴이로 활동하면서 경험이 녹아난 수신호는 오히려 현직 경찰관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이 때문에 등굣길에 관광버스와 승용차, 화물차, 공사차량 등이 1분에 족히 100여대가 양방향으로 몰렸지만 짧은시간 내 원활한 소통을 이루고 있다.

그가 교통정리를 하며 항상 미소만 짓는게 아니었다. 저학년 학생들이 길 건널땐 긴장한 표정으로 바뀐다. "경험상 학생들이 횡단보도라고 뛰어 나갈 수도 있고, 초보운전자 분들도 있어 혹시 모를 상황이 생길까봐 나도 모르게 긴장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가 근무한 후 아직 한 건의 교통사고도 발생치 않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 열정적으로 근무하는 모습에 지난해 울릉교육지원청 남군현 전 교육장은 감사패를 전하면 노고를 치하했다.

도로에서 만난 한 운전자(52, 울릉읍)는 "학교마다 교통지킴이 분들이 근무하고 있고, 도로에서 수신호를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이 분만큼 정확하고 운전자와 교감하는 수신호를 보긴 힘들다"며 " 덕분에 교통흐름이 좋아져 고마운 마음을 항상 들었는데 한번도 보답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또 한 학부모는 " 방학 땐가 안 나오셨을 때 도로가 엉켜 혼잡할고 위험 할 경우도 많이 봤었다. 그 때 교통지킴이 역활이 큰 것을 느꼈다. 정말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대도시엔 출`퇴근길을 러시아워 시간대라 경찰과 방송국 등에선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관리중 이지만 울릉도에선 러시아워 시간대는 여객선과 화물선 입출항 시간대다.

이 때문에 경찰에선 특별히 관리 중인 것은 없고, 학교별로 안전지킴이와 교사, 학부모 등이 자발적으로 나서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씨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이게 무슨 기삿꺼리가 되는지 모르지만 관심 가져줬어 고맙다"며 "요즘 가정마다 아이들은 보석같은 소중한 존재다. 그렇기에 안전을 더 중요시 여기게 된다. 언제까지 일할지 모르지만 일을 할 동안 매순간 안전의식을 인식하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말했다.

주위에서 보긴엔 사소하고 직업에 귀천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사회가 지탱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들이 많다. 더욱이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사회를 견고히 지탱하고 지역사회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취재를 마친 후 돌아선 귓가에 울리는 "삑~삑"소리가 오늘따라 참 정겹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