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자 보호’ 두고 ‘장외 설전’ 붙은 일선 경찰 vs 소방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서 '주취자 보호 조치' 관련 글로 갑론을박
소방 측 경찰 현장 대응 문제로 국민신문고 민원 제기
일선 논란에 국장급 업무협의…"공동 대응 요청 시 동시 출동"

정민훈 기자|2023/05/15 15:56
경찰청/박성일 기자
"112는 119의 하수인이 아닙니다. 동등한 긴급신고 출동기관입니다."

최근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주취자 보호조치 관련 글을 두고 일선 경찰과 소방 직원들이 장외 설전을 벌이고 있다. 자신을 경찰청 직원이라고 밝힌 성명불상의 A씨는 지난 12일 "길에 쓰러져 있는 주취자 신고는 119입니다. 119는 응급 확인을 위해 현장 출동해야 하고, 비출동으로 112에 업무를 넘기지 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경찰과 소방의 공동대응 문제를 지적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A씨는 소방 당국이 신고 접수 뒤 현장 출동에 앞서 경찰에 공동대응 요청하는 반면, 경찰은 현장 출동 후 필요 시 공동대응 요청을 한다며 현 신고 체계를 꼬집었다. A씨는 "신고자가 119를 불렀는데, 경찰 보고 응급 여부를 확인하라는 것은 경찰이 소방의 하수인인가"라며 "경찰은 응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며, 소방이 응급 여부를 확인할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원이 부족하고, 응급 여부가 불확실한 신고 출동으로 정작 중요한 신고를 못 나간다는 건 모든 긴급신고가 직면한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비판에 소방 측도 경찰 대응에 문제를 삼고 나섰다. 소방 측은 '멀쩡한 주취자도 병원 이송하라는 게 경찰이다', '응급증상으로 판단되지 않는 만취자는 경찰 보호조치' 등이라고 반박했다. 일부 소방관은 경찰의 주취자 공동대응 요청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10일 오후 8시 12분께 인천경찰청 C 경찰서 소속 D 지구대의 주취자 공동대응 요청을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 B씨는 출동 당시 "본 구급대는 주취자가 특이 외상은 없으나 몸을 제대로 못 가누어 주취자 응급의료센터가 있는 인천의료원으로 이송 결정 후 출동 경찰관에게 정확한 환자 정보를 위해 주취자 체크리스트, 피구호자 인계서를 요청했다"면서 "그러나 (출동 경찰관은) 그런 서류 자체를 모른다며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계서 등을 안 주시면 인천의료원으로 와 달라고 했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며 "병원에선 '왜 인적사항도 파악이 안 됐냐', '경찰이 신고했다면서 경찰 어디 있냐'고 물어 당혹스러웠다"고 부연했다.

B씨는 구급대원 10년 차가 넘도록 한 두번 이런 일이 있었으면 글을 쓰지도 않았다며 현장에서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해당 민원에 D 지구대 경찰관은 "그런 서류는 여태 소방에 준 적이 없어 주지 않았다"며 "왜 이런 서류를 소방에 줘야 하는지 경찰청 담당자의 답변 및 현장 경찰관의 의견을 부탁한다"고 내부망에 글을 올린 상태다.

소방청 슬로건/소방청
시민의 목숨과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과 소방 당국이 주취자 보호조치를 두고 현장에서 갈등을 빚는 형국인 셈이다. 경찰청과 소방청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적극 공동 대응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지만, 세부사항이 조율되지 않아 당분간 현장에서의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단 양 기관은 최근 국장급 업무협의를 통해 주취자 보호조치 등 신고 접수 시 두 기관이 함께 현장에 출동하는 데 공감했다. 공동 대응 요청 시 반드시 현장에 출동한다는 것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장마다 주어진 상황이 달라 출동한 경찰관과 구급대원 간 종종 트러블이 있다"며 "이에 이송 여부가 애매한 부분에 대해 경찰과 소방이 보호조치를 강화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소방청과의 실무자 간 논의는 경찰청 112상황기획계에서 일정을 잡을 예정"이라며 "이 논의를 통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취자 보호조치와 관련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