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조사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최소 20곳 50여 회 발포”
위원회, 조사개시 3년 만 '대국민 보고회'…발포 경위 확인
진압작전 중 민간인 피해·암매장 규모 등 일부 사실 파악
내년 오는 12월 조사 종료…내년 6월 종합보고서 채택
정민훈 기자|2023/05/1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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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는 16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열린 대국민보고회에서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이해 위원회는 이제까지의 조사활동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한 몇 가지 사실과 앞으로의 조사추진 계획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보고드리고자 한다"며 "조사 활동의 최종 결과는 조사 활동을 종료하고 종합보고서를 채택하는 2024년 6월에 상세하게 보고드리겠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지난 2020년 5월 11일 조사개시 결정 이후 현재까지 5·18민주화운동 진압 작전에 참여한 현장 계엄군 2800여 명과 경찰, 지휘관 등 주요인물, 사건 피해자들과 그 가족, 목격자와 참고인 등을 포함해 수천 건에 달하는 대인 조사를 실시했다. 또 60만 건 이상의 문헌과 2.2테라바이트(TB)가 넘는 전자문서를 수집해 분석했고, 400여 회에 걸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발포 경위와 발포 책임
위원회는 5·18 당시 광주에서의 발포는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육군본부야전예규'에 따르면 폭동진압 기간 중 총포의 사용은 여하한 긴박한 사태라 하더라도 참모총장의 승인하에 지역 사령관 명에 의한다라고 돼 있으나 위원회는 발포의 사전 승인을 명시하거나 최소한 그러한 정황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있는 작전 관련 문서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지휘계통에 있던 인물들도 발포의 사전 승인을 인정하는 진술을 하지 않아, 별도의 발포 명령이 있을 것으로 보고 집중 조사하고 있다.
위원회는 육군본무 인사참모부 차장 박모 씨로부터 "발포 명령은 문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는 것에 대해선 동감한다. 발포는 보안사 계통에서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라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이외에도 전두환이 스스로 군부 실권자인 것처럼 과시한 사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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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의 발포는 1980년 5월19일 광주고등학교 앞에서 시작해 5월20일 오후 11시께 광주역 인근 발포로 이어졌고, 5월21일 11공수와 7공수가 배치된 전남도청 일원뿐만 아니라 3공수가 배치된 전남대 일원에서 비슷한 시간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선대 앞, 학동, 지원동, 송암동 등 계엄군이 배치된 대부분 작전지역에서 발포와 그에 따른 피해를 확인했다.
위원회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총상의 의한 사망자는 135명, 부상자 최소 300명 이상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특히 5월21일 오후 1시께 시위대의 화염병 투척 및 장갑차 돌진 후 이뤄진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전에 이미 일부 병력에 실탄이 분배된 사실을 현장에 있던 계엄군의 진술과 현장 사진 등으로 확인했다.
이밖에도 위원회는 광주에 출동한 공격헬기 코브라(AH-1J)에서 20mm 발칸 연습탄 사격이 이뤄진 정황을 발견하고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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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작전 과정에서 희생된 사망자 166명의 사망 경위와 원인, 장소와 날짜 등에 대한 세부적인 조사를 시행한 결과, 저항 능력이 없거나 시위와 무관한 다수의 민간인이 계엄군의 폭력적 진압과정에서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사망자 중에는 14세 이하의 미성년자가 8명, 여성이 12명, 장애인 및 60세 이상의 노령자가 5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5월27일 진압작전 종류 직후 발생한 민간인 살상의 구체적 사실을 프랑스 사진 작가들의 연속사진과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 위원회는 5월27일 진압 작전 종료 직후 계엄군이 도청 인근에 있는 YMCA 건물에 은신해 있다 밖으로 나온 김종연을 가까운 거리에서 총격했고, 쓰러진 김종연은 길 건너 전일빌딩 8층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프랑스 사진작가 패트릭 쇼벨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다시 총격받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쇼벨의 증언에 따르면 김종연이 그를 향해 손을 들어 "헬프 미"라고 소리쳤고, 이와 동시에 YMCA 앞을 지나가던 장갑차 위에서 계엄군이 전일빌딩 8층에 있는 쇼벨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쇼벨이 몸을 숨겼다가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김종연은 쓰러져 있었고, 한참 후 김종연이 쓰러져 있는 현장에 가보았으나 그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고 쇼벨은 전했다.
쇼벨은 5월27일 진압작전 종료 후 전남도청 민원실 2층 회의실에서 윤상원 시체 사진을 촬영할 당시 다른 사망자들의 시체가 더 있었다는 사실도 증언한 만큼 위원회는 이 사실에 대해 조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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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는 광주광역시로부터 이관받은 53개소의 암매장 제보내용과 계엄군 56명의 가(암)매장 관련 증언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지난 2년간 17개소의 현장 지표조사, 유해발굴 작업을 시행해 유해 9기를 발굴, 신원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또 옛 광주교도소 부지 솔로몬 로 파크 공사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 242기의 5·18민주화운동 관련 여부와 신원 확인 등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추가 진행 중에 있으며, 유해에서 검출된 유전자 마커 검출 수가 충족되지 않아 개체분류에 의한 다른 부위의 골편을 확인하는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광주교도소에 가(암)매장됐던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 시체가 31사단 영내로 옮겨졌다가 처리됐다는 병사들의 증언이 확보됨에 따라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시체가 최종적으로 처리된 과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이외에도 20사단 62연대에 의해 광주교도소 구금자 가운데 집단구타에 의한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한 사실, 연행 및 구금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여부 등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
위원회 관계자는 "아직도 주저하거나 진실을 토로하지 못한 채 무거운 기억을 보듬고 사는 계엄군들의 양심 고백과 증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역사와 우리 사회는 그 용기를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따듯하게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부상과 체포, 가혹행위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께는 우리 위원회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국가보고서'가 명예와 존엄, 진실과 화합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