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시 부르는 이름, 기억하겠다는 다짐
2023/06/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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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과 후배 소방공무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섯 분의 이름이 국립대전현충원에 낮게 울려 퍼졌다. 지난달 25일 1994년 이전 순직으로 현충원에 모실 수 없었던 소방공무원 다섯 분의 합동 안장식이 거행됐다. 이분들을 국가의 품으로 모시는데 짧게는 31년, 길게는 7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시작은 한 장의 탄원서였다. 전북 군산소방서 소속 고 서갑상 소방관은 1972년 임용돼 1981년 군산시 소재 유흥주점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활동 중 심한 농연에 대피하지 못하고 건물 내에서 순직했다. 전북의 한 공원묘지에 안장되었고 묘지 관리비를 28년째 미납하고 있다는 배우자 강옥순 님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 탄원서는 순직 공무원에 대한 불공정한 처우에 문제 인식을 같이하는 많은 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중심이 되어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했고, 마침내 올해 3월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와 보훈'이라는 국정 가치와 궤를 같이하며 모두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국립묘지법이 3월 21일 개정·시행되면서 순직 소방공무원에 대한 안장 범위가 확대돼 순직 시기에 관계없이 화재진압과 구조·구급 등 소방 활동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에 대한 소급안장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그들의 생을 기억하는 것이 후배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 여기며, 다섯 분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고 김영만 소방관은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여 수도원으로 근무하다가 소방에 특별 채용돼 부산 중부소방서에 근무했다.
1945년 10월 27일 쉬는 날 집에서 부산진구 적기육군창고에 발생한 화재 연기를 보고 현장으로 출동해 진압 활동을 하던 중 폭발사고로 순직했다. 미군정이 정성껏 장례와 묘지를 조성해 주었지만 이후 도시계획으로 묘지가 소실돼 위패만 모시게 되었다.
고 서갑상 소방관는 군산소방서에서 근무하던 1981년 12월 13일 군산시 장미동의 한 유흥주점 화재 현장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펼치던 중 유독가스에 노출돼 대피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순직했다.
고 박학철 소방관은 울산 중부소방서에 근무하던 1983년 9월 21일 울산시 북구 소재 주택화재 현장으로 출동하던 중 비가 내려 약해진 도로 갓길 지반이 무너지며 소방차가 150m 아래로 전복되면서 추락했다. 마침 이날은 추석 명절이었고, 온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끝내 돌아가지 못한 채 안타깝게 순직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여섯이었다.
고 정상태 소방관은 동래소방서에 근무하던 1987년 7월 12일 부산시 동래구 소재 나이트클럽 화재 현장에서 인명구조와 화재진압 활동을 하던 중 거세진 화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순직했다.
고 최낙균 소방관은 종로소방서에 근무하던 1992년 2월 12일 서울시 중구 소재 공장 화재진압 현장의 고열과 방수로 건물 벽이 무너지며 현장에서 순직했다.
합동 안장식에 참석한 고 박학철 선배님의 따님은 "이제라도 아버지가 동료들과 함께 계실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아들, 남편, 아버지의 빈 자리는 유가족에게 상실과 아픔의 시간이었다.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아픔이 반복되지 않고 유족들이 긍지와 자부심으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소방청은 순직 소방공무원에 대한 부족함 없는 예우를 위해 주어진 책임을 다 할 것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