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한국 정치의 막말을 등급 매긴다면

박지은 기자|2023/07/02 16:20
박지은 정치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야당과 국민을 향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달라"며 "'불치의 질병에 걸렸다'는 극언이나 '마약에 도취됐다'는 막말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질타했다.

김 대표가 지난 1일 울산시당 워크숍에서 취재진과 만나 "(민주당이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쟁점 법안을 강행처리한데 대해) 마약에 도취 돼 오로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서 국민의 참사 마저도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는 아주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비판한 것이다. 민주당이 매달 열린 임시국회에서 양곡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등 민생법안의 강행처리를 반복처리한 점을 마약에 도취됐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최근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 데는 공감하지만, 민주당이 이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포함해 각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의원들의 '입'을 보며 들었던 당혹스러움이 남아있어서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로 시계를 돌려보자. 최강욱·김의겸·소병철 민주당 의원은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으며 고함을 쳤다. 같은 날 감사원 내부 회의 내용에 대해 질의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도 유 사무총장의 '거친 표현'을 문제삼았지만 조곤조곤 매끄럽게 진행을 마쳤다. 유 사무총장도 조 의원의 질의에 차분하게 답변했다.

지난 5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모욕 주는 일이 숨을 쉬듯 펼쳐졌다. 특히 양경숙 의원이 추 부총리에게 '입벌구'(입만 벌리면 구라)를 순화한 '입벌거'(입만 벌리면 거짓말)라는 단어를 쓰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했다. 아무리 야당의 역할이 정부와 여당 비판이고 여기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국회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귀를 의심했다.

어제만해도 임종성 민주당 의원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규탄' 범국민대회 집회에 참석해 "똥을 먹을 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는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 의원의 강력한 의지 표현이라지만 듣기에도 보기에도 불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에게 찾아가 사과 했지만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의 천안함 막말도 기억에 생생하다. 권 수석대변인은 최 전 천안함장을 향해 "부하들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라는 발언을 쏟아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일어난 장면들만 복기해봐도 김 대표의 '마약 도취'나 '불치의 병'이 막말의 등급에나 포함되는걸까 의문이 든다. 우리 정치의 막말 수위를 끌어올린 이들이 누구인지는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