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서로 다른 길 걷는 고리1·2호기…“제도 개선 필요” 한 목소리

韓 최초의 원전 '고리1호기'…영구정지 후 해체작업
해체기간 유동적…"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미비탓"
고리1호기 쌍둥이 '고리2호기'…계속운전 심사中
업계 "제도개선 통해 계속운전 기간 연장해야"

장예림 기자|2023/07/16 11:00
고리원자력본부 전경.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1·2·3·4호기./한국수력원자력
"에너지는 국력입니다. 특히 원자력 발전소는 국제적으로 검증된 기술로 운영되기 때문에 더욱 안전에 기울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전 해체, 계속 운전 등 다른 국가들은 이미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 규제 개선이 이뤄지는 만큼 우리나라도 법령이 하루빨리 개정되길 바랍니다."

12일 찾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본부 고리제1발전소(고리1·2호기). 고리1호기와 2호기는 5~6년 간격으로 착공 및 상업운전에 돌입했지만, 두 원전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고리1호기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고리2호기는 계속해서 우리나라 전력 수급의 핵심을 맡게 된다.

그중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1호기'는 40년간의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얼마전 가동한 신한울1호기와 달리 고리1호기는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있는 등 시간이 흐른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17년 영구정지를 결정한 한국의 첫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이자 최초의 영구정지 원전이다. 이에 앞서 고리 1호기는 연장 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성 등의 이유로 영구정지를 결정했다.

고리1호기 건설(1972년)은 당시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총 1561억원을 들였다.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약 4배에 달하는 규모다. 고리1호기 건설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원전 보유국이 됐고,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2일 찾은 고리원자력본부 고리1발전소 고리1호기 터빈룸 모습. 터빈룸은 통상 2차측(2차 계통)으로 불리며, 실제로 전력을 생산하는 공간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안전모에 안전화를 갖춰 신고 들어간 고리1호기 터빈룸에는 직원들이 정지된 설비들을 확인·점검하는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설비에는 각각 '영구정지 관련 미사용설비'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는 즉시해체 방식으로 해체를 준비하고 있다. 해제방식은 △즉시해체 △지연해체 등 두 가지로 나뉘는데, 즉시해체 방식은 해체승인 후 15년 내외로 해체 작업을 완료한다. 반면 지연해체는 60년 동안 방사성물질을 포함하는 설비 일부 또는 전부를 유지한 후 방사능이 자연스레 감소하면 해체하는 방식이다. 즉시해체 방식은 소요기간이 짧은 만큼 해체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지연해체 방식보다 경제성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미국·독일·프랑스 등 주요국가들도 즉시해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은 정부의 해체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2021년 5월 한수원은 최종해체계획서를 제출한 후 2년 간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구정지 원전인 만큼 보완할 점이 많아 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승인 심사 기간이 아닌 해체까지 소요되는 시간이다. 이론상으로는 15년 내외로 해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구축이 진전되지 않으면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고리1호기를 해체할 경우 고리1호기 내부에 있는 사용후핵연료저장조에 있는 폐기물을 임시 저장시설인 건식저장시설(맥스터 등)로 옮겨야 한다. 그러나 이미 건설된 건식저장시설도 포화에 다다른 데다가, 최종 저장시설인 '영구처분시설'이 전무후무하면서 이르면 2030년부터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절차 및 저장시설 설치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안(고준위 특별법)'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해체 완료까지 시기는 사용후핵연료 문제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해체가 가능한데, 사실 지역과 함께 가야 하는 데다가 원전 해체를 처음하다 보니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리2호기 외부 전경./한국수력원자력
1호기 터빈룸에서 나와 몇 걸음 이동하면 고리2호기 주제어실로 들어갈 수 있다. 주제어실은 발전소를 운영하는 비행기의 조종석과 같은 곳이다. 주제어실은 10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며, 총 3교대로 운영되고 있다.

고리2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계속운전에 대한 심사를 받고 있다. 한수원은 올해 계속운전에 대한 운영변경허가 신청을 완료, 2025년 6월 재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리2호기는 40년 간 부산시민 전체가 10년간 사용한 전력량을 생산해 냈다.

고리2호기는 2025년 승인을 받더라도 2033년 4월이면 다시 가동을 멈춰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제도상 안전성 검토 등 준비 기간을 포함해 총 10년까지만 계속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준비 기간을 포함해 10년일 경우 경제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설비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어렵다"며 "전 세계적으로는 계속운전 기간이 20년으로 연장되고 있는데, 이 기간 동안 원자로 외에 모든 설비를 다 교체할 수 있어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다.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리2호기와 동일한 노형의 원전 13기 가운데 10기가 계속운전을 하고 있다. 미국의 포인트 비치(Point Beach) 원전은 20년 계속운전 승인을 받고, 80년 운전을 위한 2차 계속운전을 신청한 상태다. 슬로베니아의 크로슈코(KRSKO) 원전은 환경영향평가 수행 후 올해 1월 2043년까지의 20년 계속운전을 승인받았다.

향후 7년 내에 고리2호기 뿐만 아니라 고리3·4호기, 한빛1·2호기 등 모두 10기의 원전이 운전허가기간이 만료된다. 이들 원전을 계속운전할 경우 약 107조6000억원 이상의 국가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에너지안보 확보와 탄소중립 달성, 국가 비용 절감 등을 위해서는 원전 계속운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수원 관계자는 "고리1호기의 해체에서, 2호기,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3,4호기의 계속운전 과정에서 원전의 역사는 새로이 쓰여질 것이고, 그 안에서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며 "우리는 원전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덧붙였다.

고리2호기 사용후핵연료저장수조. 이 저장조는 40년간 운영되면서 총 869다발을 저장하고 있다. 여유량은 41다발 정도로, 향후 10년에 달하는 용량을 저장할 수 있도록 조밀저장대로 확충될 예정이다./한국수력원자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