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역대급 폭염에 고통받는 축산 현장…주인도 가축도 ‘몸살’

선풍기·분무기로 무더위 막다가 관리비 폭탄
5년 만에 폭염 특보…가축 16만마리 폐사
농식품부 "방역 물품 제공 계획 중"

김형준 기자|2023/08/04 16:26
4일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일대의 한 한우농장. 농장 주인 황호선(69)씨가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김형준 기자
"13년 넘게 가축을 키우고 있지만 이렇게 더위가 심한 적은 처음입니다. 밤에도 열대야가 이어져 혹시 소가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4일 오전 10시 38분께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일대에서 110마리의 소를 키우는 황호선씨(69)의 농장. 아직 정오가 되지 않았음에 축구장 두 배 넓이가 넘는 농장 내부 온도는 34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돼 무더위에 지친 소들은 그늘로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쉴 새 없는 더위에 답답한 건 사람이나 가축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씨는 무더위에 맞서 분무기로 물을 뿌린 뒤 대형 선풍기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소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최근 30만원이 나오던 전기세가 70만원, 수도세가 15만원에서 30만원으로 급증한 '관리비 폭탄'을 맞았다. 하지만 가축 폐사 시 손실이 막심하기에 이를 아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황씨는 "한 번 분무기를 쓰면 3분 동안 물을 2톤(t)이나 사용하지만 소가 폐사하면 최소 300만원에서 최대 700~8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기에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다"며 "한 포대에 2만원이 넘는 각종 영양제도 소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4일 농장 내부에 있는 환풍 제어기. 오전 10시 41분 기준 내부 온도 34도를 기록했다. /김형준 기자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6월 19일부터 지난 1일까지 전국에서 가축 16만5985마리가 폐사했다. 특히 무더위가 심해지면 가축의 품질도 떨어져 추가 재산 피해가 우려된다.

황씨의 농장 옆에서 100마리의 소를 키우는 박태순씨(68)는 "1996년부터 농장 생활을 했는데 이렇게 더웠던 적이 없다"며 "젖소의 경우 더위를 먹으면 젖이 나오지 않는다. 더위로 인해 번식에도 지장이 생겨 더 큰 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황씨도 "무더위로 소들이 기운이 빠져 항상 마음 놓고 있을 수 없다"며 "밤에도 계속 휴대전화로 농장 CCTV를 지켜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폭염으로 인한 축산업계의 시름이 깊어지자 농림축산식품부도 위기 극복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과거 폭염 피해가 있었던 농가와 사육 밀도가 높은 농가를 중심으로 현장을 방문해 지붕에 물을 뿌리거나 단열재를 붙이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며 "각 지자체·농협 등 관련 단체와 협의해 고온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을 위한 약품과 방역 물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당 조치는 항구적이지 않은 임시 방편에 불과해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폭염도 자연재해이기에 농가의 경영 안전 장치를 보완할 수 있도록 보험 지원을 확대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