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을의 맛·풍경...목포가 건네는 위로

목포 가을 소경

김성환 기자|2023/10/24 17:37
유달산 정상부에서 본 풍경. 목포대교와 수많은 섬들이 어우러진 풍광이 장쾌하다./ 김성환 기자
단풍무리 산야(山野)에 내려앉는다. 풍경은 화려해지는데 수수한 항구도시의 가을은 유별나게 애틋하다. 전남 목포 얘기. 그리운 것들을 더 그리워하게 만드는 힘이 이 도시에는 있다. 한바탕 '가을앓이'는 여기서 겪자.

'조금새끼'가 많았던 온금동/ 김성환 기자
영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유명해진 서산동/ 김성환기자
유달산(280m) 얘기부터 하자. 목포가 유달산이고 유달산이 목포였으므로. 현재 목포 땅의 60~70%는 일제강점기 시작된 간척의 부산물이다. 1930년대 발간된 '목포부사'는 '유달산자락 빼면 평평한 땅은 한 평도 없다'고 소개한다.

이러니 산허리 동네마다 질박한 삶이 오롯하다. 일제강점기 이래로 어부들이 모여 살던 온금동, 서산동 일대에는 '조금새끼'가 많았다. 조금 무렵의 물때에는 바다가 잔잔해져 물고기가 잘 안 잡힌다. 이때 어부들이 아내와 부부관계를 맺는 집들이 많았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조금새끼'다. 집집마다 동갑내기 많았고 풍랑으로 한날한시에 남편을 잃어 제삿날 같은 집도 많았단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던 북교동과 반대로 일본 사람들 기거하던 유달동의 경계가 목포오거리. 여긴 늘 팽팽한 긴장 지대였다. 높지 않지만 당당한 바위산은 지난한 삶을 버티게 했다. 떠나 살면서도 그리워 늘 품고 살았을까. 무안 고개 넘어 찻길로 드나 고하도 에둘러 뱃길로 상륙하나 옹골진 이 산이 보이면 가슴부터 울컥한다는 이들이 지금도 수두룩하다.
목포해상케이블카. 앞으로 보이는 우뚝한 산이 유달산이다./ 김성환 기자
세월이 흘렀으니 유달산 구경도 수월해졌다. 목포해상케이블카가 북항을 출발해 유달산 정상부를 지나 바다 건너 고하도까지 운행한다. 총 길이가 3.23km, 왕복에 걸리는 시간도 40분이나 된다. 유달산 정상부 승강장에서 내려 일대를 둘러본 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면 된다. 또 정상부에서 하산하면서 산을 구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산 중턱의 이난영(1916∼1965) 노래비는 우리나라 노래비의 시초, 등산로 입구 노적봉은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정유재란 때 노적(곡식 따위를 한데에 수북이 쌓은 물건)처럼 보이게 해 왜구를 속였다는 바위다. 정상까지 여전히 걸어 오르는 이들도 많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약 40분 거리다.

고하도 용오름 둘레길/ 김성환기자
고하도 해안산책로/ 김성환기자
고하도는 쉬엄쉬엄 산책하기에 어울린다. 육지에서 1km 남짓 떨어진, 길쭉한 섬인데 충무공이 정유재란 때 명량대첩에서 승리한 후 여기서 수군을 재정비했단다. 고하도전망대는 그래서 판옥선을 겹겹이 쌓아놓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선 유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 따라 가는 '고하도용오름둘레길', 용머리까지 이어진 약 1km의 해안산책로도 좋다. 유달산과 목포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항구도시의 풍경이 예쁘고 걷기도 편하다.

뉴문마리나 요트 계류장/ 투어플랜트 제공
사람들은 바다에서 유달산을 바라보기도 한다. 죽교동 신안비치호텔 앞에서 뉴문마리나 요트가 출발한다. 크루즈도 다닌다. 삼학도 크루즈가 삼학도 옛 해경부두에서 출발해 목포해상케이블카타워, 목포대교, '춤추는바다분수' 등을 지나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다. 크루즈가 출발하는 삼학도 옛 해경부두 자리에는 '항구포차'가 생겼다. 15개의 포장마차가 각각 세발낙지, 홍어, 민어, 병어, 먹갈치, 꽃게 등 목포의 싱싱한 산물로 만든 음식을 낸다.

다음은 삼학도 얘기. 사는 것 힘들던 시절, 사람들에게 유달산만큼이나 큰 위로를 건네던 섬이다. 대삼학도, 중삼학도, 소삼학도 등 세 개 섬으로 이뤄졌고 뭍에서는 1km 남짓 떨어져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궁핍했던 시절 사람들은 배를 타고 삼학도로 들어와 헤엄치고, 씨름하고, 사랑을 속삭이며 고단함을 잊었다. 삼학도는 1960~1970년대 대대적인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됐다가 2011년 다시 섬으로 복원됐다. 섬 사이 물골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우후죽순 들어섰던 집과 공장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삼학도 외곽 부두에서 목포역까지 물자를 운반하던 삼학도선(線)도 사라졌다. 날씨가 온화한 계절에 사람들은 이제 삼학도를 산책하고 섬을 바라보며 카누도 타고 요트도 탄다.

대삼학도 난영공원/ 김성환 기자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 김성환 기자
대삼학도에는 난영공원도 있다. 동의 생가터, 유달산 중턱의 노래비와 함께 목포에서 이난영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다. 이난영은 희망 없고 고단했던 1930~1940년대에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로 위로했던 '국민가수'다. 원래 경기도 파주 공원묘에 묻혀있었는데 삼학도가 복원된 후 2006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백일홍 나무 아래 수목장 묘지가 조성됐다. 공원에선 목포 앞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목장에는 센서가 장치되어 있어 사람이 접근하면 '목포의 눈물' 노래가 흘러나온다.

쑥꿀레/ 투어플랜트 제공
마지막으로 입이 즐거운 얘기. 오래된 항구도시에는 오래된 음식점도 많다. 죽동의 '쑥꿀레'는 1956년에 문을 연 분식집. 쑥꿀레는 쑥을 넣은 찹쌀 반죽에 팥고물을 묻히고 둥글게 빚어 조청에 담가 떠서 먹는 음식인데 최근 매스컴에 소개되며 화제가 됐다. 산정동의 신미정은 2019년 전국 최초로 '맛의도시'를 선포한 목포가 목포 으뜸맛집으로 지정한 곳이다. 업력이 40년에 이른다. 바다장어탕, 오리탕, 삼계탕, 낙지요리 등을 내는데 특히 낙지초무침이 별미로 꼽히다. 막걸리로 담은 식초를 사용하고 양파, 오이, 배 등을 함께 넣어 만드는데 술안주로 먹어도 좋고, 대접에 밥과 초무침을 넣고 김가루를 얹어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다. 홍어, 먹갈치도 이제부터 맛있을 때다. 폭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묵은 김치와 함께 먹는 홍어삼합은 남도의 진한 풍미 느낄 수 있는 음식. 거무튀튀한 빛깔의 목포 먹갈치도 알아준다. 은갈치에 비해 씨알이 굵고 고소한 맛이 더 강하다. 유달산, 삼학도, 이난영의 노랫가락, 오래된 음식….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는 것들이 참 많은 목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