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러시아와 이스라엘 사이 딜레마에 빠진 미국
선미리 기자|2023/11/24 06:00
일시적 휴전이 성사됐지만 민간인의 희생은 너무나도 컸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전면전에 돌입한 이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는 1만4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생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가 1만명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가자지구의 희생자 수가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알시파 병원 급습에는 국제사회가 일제히 경악하며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규탄했다. 줄곧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민간인 희생이 불어나자 입장을 선회해 휴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최근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했다. ICC 비회원국인 이스라엘은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조사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인데, 이는 러시아 정부의 입장과 똑 닮아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모두 지지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이중잣대'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미국의 흔들리는 도덕적 우위는 러시아에게 호재다.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을 "미국의 중동정책 실패"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휴전 합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큰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외교적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민간인의 추가 희생을 막기 위해 미국 등 각국의 보다 공격적인 휴전 중재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록 연기됐지만 일시 휴전이 발효되면 약속된 나흘간은 가자지구에서 총성이 멈추게 된다. 이 고요함이 단지 며칠에 그치지 않고 영구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