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재 판치는 韓③] 도둑을 ‘도둑’이라 말하면 범죄?…재조명된 ‘사실적시 명예훼손’
대다수 국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안해
법조계 내에서도 전면 폐지에 대한 의견 분분
"표현의 자유 우선" VS "안 당해보면 위험성 몰라"
김채연 기자|2024/01/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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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육비를 미지급한 부모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파더스' 운영자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하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른바 '탐정 유튜버'의 '사적 제재' 활동 역시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유튜버 카라큘라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신상을 공개한 이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고(故) 표예림씨 역시 생전에 가해자들의 신상을 유튜브 등에서 폭로한 뒤 오히려 가해자들로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엔도 이미 여러 차례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2011년에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2015년에는 유엔 국제규약위원회(ICCPR)가 한국 정부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법조계 내에서도 전면 폐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형사법에 정통한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는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사실상 입막음의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표현의 자유는 엄연한 헌법상의 자유고, 그렇기 때문에 그 우월적 지위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 타인의 명예나 인격권에 대한 훼손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는 민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폐지에 힘을 실었다.
반면 다수의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해온 수도권의 한 차장검사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의 위험성을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며 "전면 폐지되면 개인의 모든 사생활 영역이 인터넷에 유포돼 피해를 입어도 이를 호소할 길이 없다. 민사로 해결하면 된다는데, 재판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피해 회복이라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지난 2021년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에 대해 5대 4 합헌 결정을 내렸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고 사회 고발과 같은 공적인 활동을 일부 제약하는 측면이 있지만 개인의 명예와 인격 보호가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앞서의 차장검사는 "명예훼손 처벌 조항은 남겨두고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 사정이 있는지 잘 살펴 처벌의 정도를 구분 짓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