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칼럼] 세금 투입 제4이동통신 추진은 통신 포퓰리즘

2024/01/16 17:55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선거철만 되면 통신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통신비 인하 공약이 빠지는 법이 없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의 경쟁에 맡겨둘 때는 생존할 수 없는 제4이동통신 추진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제4이동통신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고 과점체제"라는 이유로 추진되고 있지만 좀 더 엄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경제학에서는 공공재를 비경합적(누구나 사용 가능)이며 비배제적(대가를 지불할 필요 없음) 성격의 재화와 서비스로 정의한다. 따라서 이동통신 서비스의 재료인 주파수는 공공성이 있지만 이를 기업이 거액을 주고 구매한 후 통신설비를 투자해서 부가가치를 더해 완성한 통신 서비스의 경우에는 공공재로 볼 수 없다.

정치권은 경제학적 정의를 동원하지 않고 그저 정부 또는 공기업이 제공하는 재료를 써서 만든 재화나 서비스를 공공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공재를 그렇게 정의하면 공공재 아닌 상품과 서비스가 없게 된다. 한국에서는 전력과 수돗물이 모두 공기업에 의해 공급되는데 전력과 수돗물을 쓰는 모든 재화가 공공재로 분류된다. 정치권이 이처럼 공공재라는 용어를 오용하는 이유는 결국 기업과 민간 시장에 대한 개입과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민간 서비스의 가격 인하를 정치권이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통신비 인하를 통해 가계 살림에 도움을 주겠다는 전제가 타당한지부터 따져보자.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2013년 가계소비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2%에서 2022년 4.9%로 지난 10년 동안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매년 비중이 줄어왔다. 다른 소비 항목에 비해 통신비가 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조사인 2023년 1분기에는 4.6%로 통신비 비중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통신비는 담배·주류와 가사 도우미 서비스 다음으로 비중이 작은 항목이다. 통신비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말은 현실이 아니라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반증이다.

2023년 1분기 조사에 따르면 통신비의 가계당 지출은 13만원이다.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인원수가 2022년 말 2.2명이므로 1인당 월 5만9000원을 통신비로 쓴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와 정책 대상이 되고 있는 무선통신만 보면 가계에서 인식하는 통신비는 통신서비스 지출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SK텔레콤의 공시자료에 의하면 이동통신사업 가입자당 평균 매출은 2만9913원, 알뜰폰 가입자는 2만7977원으로 가계동향 조사 금액의 47%인 평균 2만8000원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유료 콘텐츠 구매와 같은 비용도 포함되어 통신서비스의 금액은 그보다도 적다. 나머지의 대부분은 통신장비(단말기)의 지출과 케이블 TV나 인터넷 서비스와 같은 부가 상품의 지출인 것이다.

2023년 1분기 가계통신비는 전년 대비 7.1% 증가했다. 하지만 이 중 이동전화기 등 통신장비 지출은 28.9% 증가한 반면, 통신 서비스 지출은 1.8% 증가에 그쳤다. 이마저 통신 사용량의 계속되는 증가와 팬데믹으로 축소되었던 해외로밍의 회복에 따른 것이지 단가는 내려가고 있다. 독과점 횡포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통신사는 5G와 같은 새로운 기술 투자가 소강상태라서 영업이익이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 지난해 3분기 통신 3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9%다. 통신사들을 압박해서 영업이익이 전혀 없는 회사로 만들면 9%의 인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월 가구당 통신 서비스 지출 6만1600원의 9%는 5544원이다. 대규모 투자가 주기적으로 들어가는 통신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5%에 불과하다.

이익을 다 빼앗아 소비자에게 돌려주면 통신비를 한 달에 가구당 2000~3000원 낮출 수 있다. 이게 무슨 가계에 도움이 된다고 '통신비 인하'란 정치적 공약을 계속하고 시장 개입을 끊임없이 자행하는가? 어떤 분석으로도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통신 사업에서 우리나라 통신사들이 독과점 초과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과거 9차례나 실패한 제4이동통신사의 인가를 추진한다고 한다. 그것도 5000억 이상의 보조금을 쓰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내놓고 있다.

무선통신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통신사업의 특징이 거대한 고정자산 투자와 낮은 한계(변동)비용의 원가구조를 갖고 있다. 거대한 고정자산 투자의 비용은 고객수로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고객이 많은 회사가 절대적인 원가 우위를 갖는다. 후발업체가 원가 경쟁력을 갖는 일은 기존과 다른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따라서 후발업체를 인가해도 가격 경쟁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로 그 어떤 나라도 한 도시에 소비자들이 2~3개가 넘는 통신사를 골라서 쓰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통신사가 독과점이라면 전 세계 무선 통신은 다 독과점 상태다.

과거 통신사 간의 무선통신의 품질 차이가 크게 났을 때 정부는 3위 업체의 생존을 위해 비대칭 규제로 원가 경쟁력이 없는 업체가 생존하도록 높은 가격을 유지시켜 주었다. 그 결과 소비자는 월등히 높은 가격을 지불한 경험을 지금 정부는 잊고 있다.

경쟁이 많고 신규 진입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민간의 정상적인 투자 결정이 아니라 정부가 좀비 기업을 만들어서 기업의 숫자만 늘리는 것은 경쟁을 왜곡하는 것이고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다.

아무리 가격 인하 압력을 행사해도 가구당 월 수백원 이상 낮추어 줄 수 없다는 것이 데이터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 비대칭 규제로 소비자의 비용만 늘렸던 실패한 정책을 반복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통신은 이미 오래전의 민간 서비스이고 통신의 공공성은 지금의 법과 규제로도 보장되고 있다. 그리고 충분히 경쟁적인 시장이다. 통신에 대한 정치적 포퓰리즘 이제 끝내야 한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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