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외국인 투자돕는 옴부즈만···세계에 한국형 모델 알릴 것”
옴부즈만 제도
외환위기 후 한국이 첫 도입
기업 애로 정부에 전달 역할
투자하기 어려운 나라?
중대법 등 모호한 규제 많아
빈번한 사법리스크도 걸림돌
논설심의실|2024/02/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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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83)는 지난해 말 영국 출판사 라우틀리지를 통해 영문 책자 'South Korea and Foreign Direct Investment: Policy Dynamics and the Aftercare Ombudsman(한국과 외국인 직접투자: 정책의 역동성과 한국형 사후관리 제도)'를 발간했다. 안 교수는 지난 2006~2014년 3연임 하며 8년 동안 코트라 외국인투자 옴부즈만으로 활약해 외국기업들에게서 '미스터 옴부즈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규제개혁위원장,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 등도 맡아 기업규제 혁파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최근 아시아투데이와 인터뷰한 안 교수는 "우리나라가 사후 관리제도를 통해 외국 기업들의 애로와 고충을 잘 해결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안 교수가 5년 동안 공들여 집필한 이 책은 한국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역사를 조망하고, 그가 외국인 투자 옴부즈만으로 활동한 경험과 성과를 생생하게 담았다.
-외국인 투자 옴부즈만 제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우리나라 외국인투자 옴부즈만 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외국인 직접투자 (FDI) 유치가 첩경이기 때문에 이를 성공적으로 활성화하고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1999년 10월 외국인투자촉진법에 의해 도입됐다. 옴부즈만 제도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영업활동을 하는 동안 예상치 않게 일어나는 문제와 억울한 사항들을 접수해 이를 해소 및 해결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옴부즈만은 반관(半官)반민(反民) 신분으로 기업 애로를 듣고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옴부즈만은 조달청장을 지낸 김성진 박사가 2018년부터 맡고 있다.
지난 2007년 동탄신도시 지정에 따라 외국기업 강제이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부에 계획 수정을 제안해 볼보트럭코리아 등 17개 기업이 그 자리에서 계속 사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나중에 공장부지 등 땅값이 올라 많게는 수백원의 자본이득세를 물게 생겼는데 이것도 면제해 주도록 했다.
외환위기 후 프랑스 라파즈라는 세계적인 시멘트회사가 한라시멘트를 인수했는데, 2012년 강원도 정선군 채석장에서 산사태가 나 운전기사 두 명이 매몰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산림청 광물채취 허가위원회에서 안전조치 미흡을 문제 삼았는데, 허가가 안 나면 외국기업이 4000억원을 투자한 시멘트공장이 문을 닫게 생겼다. 사실관계를 알아보니 산사태는 광물채취가 아니라 우천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파악돼 결국 산림청을 설득해 허가가 나도록 도와줬다.
독일계 회사가 금괴를 수입해 반도체 부품을 만들어 삼성전자에 납품하는데, 관세청에서 금은 사치품이라며 거액의 관세를 물린 사건이 발생했다. 과거 행정조치를 살펴보니 치과의사들이 금이빨을 만들기 위해 수입하는 금괴는 중간재로 인정받아 면세되는 사례를 발견했다. 반도체용 금괴도 산업용이어서 면세대상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관세청에서 우리 주장을 받아들여 줘서 관세 환급을 받을 수 있었다.
-외국기업들이 아직 '한국은 투자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하는데 왜 그렇다고 보나.
매년 외국기업들이 투자환경 보고서를 내는데, 몇 년째 지적하는 사항이 한국은 아직 모호한 규제가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규제가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안전조치 미흡 등으로 현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대부분 국가에서는 과태료나 벌금을 매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경영자를 인신구속까지 한다. 외국기업들 사이에서도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고임금과 비싼 땅값도 큰 장애물이다. 빈번한 노사 분규에다 통상임금과 같은 사법적 리스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외국기업들이 한국투자에 의문을 제기한다.
-외국 기업들이 제기하는 불만 가운데 규제와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기술 진보는 빠르게 진행되는데 각종 제도적 환경이나 법령은 뒤처져있다는 게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는 부처별로 등록이 안 된 규제들이 공무원 책상 서랍 속에 수북이 쌓여있다. 부처 예규나 고시, 지침 같은 게 대표적인 예다. 규제가 있다는 것을 기업들이 손쉽게 알 수 있도록 양성화·명문화 시켜야 한다. 영국처럼 규제 하나를 신설하려면 기존 규제 두 개를 없애는 방식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입법과 달리 의원 입법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국회의원 몇 명이 발의하면 규제영향 평가 없이 지역구 민원을 해결해 주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규제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의원 입법도 모두 규제 영향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게 옳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양질의 외국인 투자를 꾸준히 늘리기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것이 기술이전이다. 일본 도레이가 최초로 나일론 생산기술을 한국에 전파했다. 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면방직뿐이어서 화학섬유라는 개념이 없었다. 도레이의 나일론 생산기술을 들여오면서 1970년대부터 화학섬유가 수출 주력 업종이 됐다. 도레이는 새만금에 탄소섬유 등 미래 신소재 공장도 설립해 기술을 이전했다. 현재 한국에 진출한 1만4000여 개 다국적 기업들은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20%, 고용에서 6%, 연구개발(R&D)에서 6.5%, 내수시장 판매고에서 13%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반도체 등 고도 기술 산업의 진흥을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계속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
/대담=설진훈 논설위원
정리=정문경 기자 hmmk0108@
He is… ▲1941년 경북 의성 ▲경북대학교 경제학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규제개혁위원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코트라 외국인투자 옴부즈만 ▲동반성장위원장 ▲한전 이사회 의장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