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중재자로 나선 한동훈…긴박했던 7시간 막전막후

긴박했던 7시간, 대화협의체 통해 의정 갈등 풀어낼까
정치권 "한동훈 이제 진짜 정치영역 들어왔다"

박지은 기자|2024/03/24 21:51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송의주 기자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을 하루 앞둔 24일 정부·여당·대통령실은 긴박했던 7시간을 보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국의대교수협회와 만남 후 대통령실에 의료계 요청 사항을 전달했고, 대통령실은 약 1시간만에 수용했다. 이후 총리실도 의료계와 대화를 위한 실무작업에 착수하는 당정 협력이 속전속결로 이뤄진 셈이다.

24일 여권 핵심 관계자는 본지에 "한 위원장이 일정을 비워뒀던 전날 의료계와 소통을 포함해 분주하게 보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양측의 만남은 이날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한 위원장의 입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오전 10시21분경 한 위원장이 "오늘 오후 4시경 전국의대교수협회 간부들과 만날 예정"이라고 언급하면서다.
전국의대교수협회는 전국 총 40개 의과대학 중 39개 대학이 참여하는 단체로, 교수협의회가 없는 1개 대학을 제외하고 '빅5'를 포함한 대부분의 의대가 참여하고 있다. 교수들은 제자인 전공의들의 면허 박탈위기를 정부가 해결해주지 않으면 오는 25일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만남은 의료계의 요청으로 시작됐지만, 일정 확정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고 한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이날 오전 8시 KBS 시사 프로그램 '일요진단'에 출연해 "내년부터 의과대학 신입생 2000명을 증원하기로 한 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완강한 태도에 의료계가 술렁이자 전국의대교수협회 간부들도 한 위원장과 만남을 취소하려 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난 세 달도 안 된 정치인이다. 믿어달라"고 적극 설득해 간담회가 성사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송의주 기자
한 위원장과 전국의대교수협회의 간담회는 이날 오후 4시였지만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는 3시경부터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취재진에 간담회 모두발언까지 공개될 것으로 초반 알려졌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양측 모두 비공개로 간담회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간담회는 한 위원장과 유의동 정책위의장, 박정하 수석대변인,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 겸 비상대책위원장, 조윤정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의료계 측 참석자들이 "정면충돌을 막아달라. 우리도 의사단체나 전공의들을 설득해 테이블에 나갈 테니 정부를 설득해 장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도 참석자들에게 "믿어달라.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왔겠나"라며 중재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4시50분경 간담회를 마친 한 위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국민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에 정부와 의료계 간에 건설적 대화를 중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울러 의료계도 정부와 건설적인 대화를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말씀을 제게 전해주셨다"며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다시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는 "지켜봐달라. 건설적 대화를 하는 걸 도와드리고, 문제를 푸는 방식을 제시해드리려고 한다"고 답하고 자리를 떴다.

"앗, 어디가세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송의주 기자
한 위원장은 이때부터 대통령실과 긴밀하게 소통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대변인실 명의로 오후 6시 곧장 입장을 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한동훈 위원장이 오늘 대통령실에 의료현장 이탈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해달라고 요청해왔고,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한 총리에게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도 말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와 '강대강' 대치를 이어온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이 전국의대교수협회(전의교협) 회장단과 만난 지 약 1시간만에 달라진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본지에 "한 위원장 측에서 대통령실에 연락을 취했고, 마침 그때 윤 대통령이 참모들과 회의 중이어서 빠른 결정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 한 위원장이 나서줬다"고 귀띔했다.

총리실도 곧장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를 위한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당정과 의료계는 의료개혁에 대해 각자 입장 차가 있지만, 국민의 고통과 불안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의료계의 만남을 통해 의미 있는 의견 접근을 이룰 수 있도록 당정이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
정치권에서는 한 위원장이 정부와 의료계의 중재자로 나서면서 '진짜 정치의 영역'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한동훈 위원장이 그동안은 여권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번엔 갈등을 조율하는 진짜 정치인으로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의대정원 극적 타결'이 4·10 총선까지 남은 강력한 변수라는 분석도 일찌감치 제기됐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만일 의대정원이 극적 타결될 경우, 보수 결집 + 중도 일부가 합류하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국민의힘 1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물론 한 위원장의 중재가 의미있는 성과로 돌아오려면 의료계의 결단이 남은 상황이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교수 비대위)는 입장문을 내고 "전공의에 대한 압박 중 일부를 중단한 것과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부분은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반대로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원 증원 숫자부터 없애야 한다는 강경파의 의견도 나온다.

전국의대교수협회는 오는 25일 브리핑을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국민의힘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와의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한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입장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