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의료대란 속 직접 외국인 무료진료 나선 적십자사 회장

인천적십자병원 누구나진료센터 아침부터 환자들로 북적
기업들 후원, 안내·통역·간호사·의사 등 모두가 자원봉사
전쟁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들 나란히 진료받기도

한평수 기자|2024/04/14 11:32
아시아투데이 송의주 기자 =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오른쪽)이 지난 13일 인천 연수구 인천적십자병원 누구나진료센터에서 통역의 도움을 받아 외국인을 진료하고 있다.
인천적십자병원 누구나진료센터는 13일 오전 9시가 넘어서자 의료진과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진료센터 문을 두드리는 환자들은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의료대란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진료센터는 매주 토요일 무료 진료를 빼놓지 않고 있다.

오른쪽 무릎이 아파 센터를 찾은 러시아 사할린 동포 길전자(51) 씨는 안내 자원봉사자와 통역의 도움으로 문진표를 작성했다. 의류회사에 다니는 길씨는 "제가 한국에 온지 5개월 밖에 안돼 한국말도 쉽지 않고 문화도 낯설지만 친절하게 대해줘 너무 고맙다"고 통역의 도움을 받아 마음을 표했다.·

아시아투데이 송의주 기자 = 김순기 안양시 동안구 보건소장이 13일 인천적십자병원 누구나진료센터에서 외국인을 무료 진료하고 있다.
이날 진료센터는 모두가 자원봉사로 이루어졌다. 대학생 RCY봉사단원이 안내를 했고 접수와 문진표 작성, 간호사는 물론 의사도 자원했다. 통역은 한국 경험을 먼저 시작한 '입국 선배'들이 주로 했다. 김리영(가천대 간호학과) 학생은 "평소엔 제빵봉사 등을 하지만 졸업이후를 대비해 실무도 배울 겸해서 가끔 외국인진료를 돕는다"고 했다. 학생은 "센터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좋아졌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주로 취약계층의 의료를 담당하는 전국의 적십자병원들은 의료대란이 발생하면 더 분주해진다. 이럴때면 외국인들도 진료받기가 수월치않다. 머나 먼 이국 땅에서 아프면 하소연 할 때도 마땅치 않다. 한국에 온지 4개월째라는 카자흐스탄의 오가미 예브게니(47) 씨는 "선반조립을 하다 허리를 다쳤을 때는 걱정이 앞섰는데, 다행이 다니는 교회의 소개로 센터에 오게 됐다"고 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고 했더니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답했다.

아시아투데이 송의주 기자 = 인천적십자병원 누구나진료센터에서 13일 외국인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적십자병원 진료센터는 주변에 남동공단이 있는데다 외국인 집단거주 동네인 함박마을이 있어 외국인 진료 수요가 많다고 병원관계자가 귀뜸했다.이날은 베테랑 의사 2명이 직접 외국인 진료봉사를 맡았다. 대한적십자사 김철수 회장과 김순기 안양시 동안구 보건소장이었다. 김 회장은 50여년 환자의 곁을 지켜 온 베테랑 내과 전문의이다. 회장으로 재직하며 바쁜 와중에 지금도 틈틈이 병원 진료를 하고 전국으로 의료봉사 활동도 자주 간다. 김 회장은 병원에서 진료할 때가 마음이 가장 편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인천에 와보니 한국이 다문화국가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지만 인천에 진료하러 자주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다문화국가가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다문화인구 5%(대략 250만명)가 넘으면 다문화국가라하는데 한국은 현재 4.9%에 이미 도달했다고 소개했다. 김 회장은 "현재의 공공병원 시스템과 의료진의 노력으로 이들을 품기에는 부족하다"며 정부의 정책적 관심을 당부했다. 후원과 봉사자들의 열정만으로는 감당하기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아시아투데이 송의주 기자 = 인천적십자병원 누구나진료센터에서 13일 외국인환자들이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문진표 작성과 예약을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7월 센터 개소이후 주말이면 진료봉사를 해온 김순기 소장은 "인생의 1%는 봉사해야겠다는 평범한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주일에 1%는 2시간이 채 안된다며 직접 셈까지하며 겸손해 했다. 김 소장은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재직하다 은퇴이후 가까운 센터와 인연을 맺고 인술을 베풀고 있다.

센터는 개소이후 현재까지 30여개국 연인원 1만1500여명의 외국인 환자를 진료해왔다. 이날 환자는 러시아인이 많았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인도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미국인도 눈에 띄었다. 이날은 없었지만 전쟁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이 동시에 진료를 받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고 병원관계자는 귀뜸했다.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적십자병원 누구나진료센터 관계자들이 병원의 외교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