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 팔아 계약률 높이자”…청약시장 침체에 ‘분할 분양’ 잇따라

'쪼개기 분양'으로 계약률 높이기 안간힘
1000가구 이상 대단지 분할 분양 사례 많아
모수 줄여 청약 경쟁률 높게 인식
업계 "미분양보다 손해 훨씬 적어"
전문가 "불황 속 분위기 반전 의문"

전원준 기자|2024/04/15 17:19
주택경기 침체 여파로 아파트 청약 열기가 시들해지면서 하나의 아파트를 여러 단지로 나눠 분양하는 '분할 분양' 사례가 늘고 있다. 청약 당첨자 발표일을 다르게 설정해 중복 청약자를 유입시키거나, 모수(母數)가 큰 대단지의 청약 경쟁률이 높아 보이도록 해 계약률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5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광주 북구에 들어서는 '광주 운암자이포레나 퍼스티체'(3214가구)는 오는 16일 1·2·3단지에 대한 1순위 청약을 각각 받는다. 단지별 가구 수는 △1단지 998가구 △2가구 1486가구 △3가구 730가구다. 당첨자 발표은 23·24·25일로 각각 다르다.

통상 1000가구 이상 대단지의 경우 시행·시공사 등 사업 주체가 한 아파트를 여러 단지로 나눠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입주자 모집 공고 게재 건수가 늘어나 사업 주체가 청약홈에 납부해야 하는 수수료의 총액이 더욱 비싸질 수 있다는 게 한국부동산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업 주체가 이처럼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도 아파트를 여러 단지로 쪼개 공급하는 데는 고분양가·고금리 기조로 청약 수요 심리가 크게 위축된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방식을 활용하면 당첨자 발표일을 나눠 한명의 청약자가 여러 단지에 신청할 수 있게 하고, 모수를 줄여 수요자들로 하여금 청약 경쟁률이 높은 단지로 인식하게 해 분양 계약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분할 분양을 통해 물량을 털어내기만 한다면 수수료와 홍보비용 등은 미분양에 따른 손해보다 훨씬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서구에 조성되는 '중앙롯데캐슬 시그니처'(2772가구) 역시 오는 17일 1블록(929가구)·2-1블록(915가구)·2-2블록(928가구) 등 3개 블록으로 나눠 1순위 청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 3개 블록의 당첨자 발표일 역시 각각 24·25·26일로 모두 다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분할 분양' 시도가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한 아파트를 여러 단지로 나눠 파는 방식은) 청약 수요가 많지 않을 곳으로 예상되는 단지에서 분양 계약을 원활히 마감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 수법"이라면서도 "최근 시장 상황이 녹록잖다 보니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단지도 있다"고 했다.

실제 인천 송도에 지어지는 '송도자이풍경채 그라노블'(2728가구)도 지난 달 12일 총 5개 단지로 나눠 1순위 청약자를 모집했다. 이 단지의 당첨자 발표일도 1·2단지 3월 20일, 3·4·5단지 21일로 각각 달랐다. 하지만 2개 단지가 1순위 청약에서 미달된 데다 나머지 3개 단지도 저조한 경쟁률을 보인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건설사 임원은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금리 인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침체한 분양시장 분위기가 반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조기에 일괄 분양을 통해 자금도 확보하면서 상대적으로 청약 문턱이 낮은 무순위 청약으로 넘어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