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재판!] 업무 스트레스로 사망…대법 “우울증 진단·치료 기록 없이도 보험금 지급 가능”

KAI 근로자 업무상 스트레스로 사망
유족 보험금 지급 거절되자 소송 제기
2심 "진단·치료 기록 없어" 패소 판결
대법 "객관적 자료로 더 심리해야"

김임수 기자|2024/06/04 12:02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사망한 경우 직전에 우울증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않았더라도 법원이 다른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심리해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씨 유족들이 제기한 보험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근무하던 중 목을 매고 사망했다. 유족들은 A씨가 육아와 회사 업무를 병행하다 업무상 스트레스 및 육아휴직 문제로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수사기관 판단과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재해 인정 등을 근거로 사망보험금을 신청했으나 지급을 거절당하자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을 약관에 둔다. 피보험자가 보험금을 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도덕적 해이를 막는 차원에서다. 다만 피보험자가 심신상실이나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예외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구할 수 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한 것이 맞는다며 보험사 5곳이 합계 1억89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A씨가 사망 전 주요우울장애로 진단받거나 관련 치료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원심(2심) 판단에는 보험계약 약관의 면책 예외사유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는 사망할 무렵 폭증한 업무량으로 연장근무를 하는 일이 잦았고 상당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시 7세와 3세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는데, 업무가 가중되면서 예정하고 있던 육아휴직 신청을 사망 전날 철회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사망 직전 두 달 정도 A씨에게 피로나 활력의 상실, 집중력 감소, 식욕 감소 및 소화기 장애, 수면장애와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증상은 주요우울장애를 겪는 환자에게 보이는 증상과 유사하다"며 "원심으로서는 A씨가 사망하기 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 유족 등 주변인의 진술 등을 비롯한 모든 사정을 토대로 더 심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