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직 수리금지 철회에 “특혜 반복·필수의료 약화” 지적

복귀 전공의에 행정처분 중단·전문의 추가 시험도 허용
“의사 직역만 특혜 되풀이···정책 신뢰 상실”
사직 전공의 피부과 등 일반의 취업 시 필수의료 약화 우려
전공의 다수 복귀 여부도 미지수

이준영 기자|2024/06/05 15:16
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사진=연합
의대 증원에 반발해 100일 넘게 집단 이탈중인 전공의들에 정부가 제재 조치를 철회하고 불이익이 없도록 입장을 바꾸자 국가 차원에서 의사만 특혜를 반복해서 주는 것은 사회적 형평성에 어긋나고 정책 신뢰성을 잃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로 사직서가 수리된 필수의료 전공의들이 피부과 등 일반의로 옮겨갈 경우 오히려 필수의료를 약화시킨다는 우려도 있어 정책 실효성과 정당성 모두 의문이 나왔다.

5일 일부 의료계와 환자단체는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내린 각종 명령 철회와 행정처분 중단에 문제를 제기했다.
전날 보건복지부는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금지명령과 전공의에 부과한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했다. 또 복귀 전공의에는 기존에 예고한 3개월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 병원 이탈로 수련 기간을 채우지 못한 경우에도 제 때 레지던트나 전문의가 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꿔 수련기간을 줄이거나 추가 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르게 할 방침이다. 의료공백 장기화에 따른 환자 고통과 현장 의료진 피로를 고려해 방침을 바꿨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의대 증원을 시도할 때마다 환자를 떠나 집단행동을 벌인 전공의들에 또 면죄부를 줘 직역 간 형평성과 정책 신뢰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0년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휴진했을 당시에도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어긴 전공의 등 10명을 고발했다가 취하했다. 당시 의대생들도 의사 국가시험 응시를 거부하고 집단 휴학했지만 정부는 결국 재응시 기회를 줬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100일 넘게 병원을 떠나 환자와 병원 노동자 피해를 발생시켰는데도 의사 직역에만 정부가 제재를 면제하고 면죄부를 또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국민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려운 과도한 특혜"라며 "원칙을 번복하면서 정책 신뢰성을 정부 스스로 훼손했다. 정부가 결국 물러선다는 것을 또 확인한 전공의들은 더 버티면 정부가 더 후퇴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이탈로 재정난에 처한 일부 병원들은 간호사 등 병원 노동자들에 희망퇴직과 무급휴가를 요구하고 있다.

전공의 이탈로 진료 차질 등 피해를 겪는 중증환자들도 정부 구제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정부가 지난 100일 넘도록 환자와 가족들 고통에 전공의들의 제대로 된 사과 한번 없이 훌륭한 의사로 거듭나도록 돕겠다는 시각에 매우 적절치 못한 내용이라 생각한다"며 "이런 시각으로 그동안 환자들 고통을 외면한 게 아닌가 싶어 분통을 터트리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특히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을 철회하면서 기존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피부과나 성형외과 분야 일반의로 취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공의 복귀를 유도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필수의료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4월 한국피부비만성형학회가 주최한 춘계 학술대회에 전공의들이 다수 참여했다는 보도가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각종 명령 철회와 면허정지를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의료 분야 경쟁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공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기에 다수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은 더 복귀하지 않고 피부, 통증 분야 일반의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