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비구니의 삶과 수행’ 대행·수인·수옥·장일스님 논하다

한마음선원 대행선연구원 제8회 학술대회 개최
전국비구니회장 광용스님 등 100여 명 참석
비구니 선지식의 기록 발굴 및 조명 위한 대회

황의중 기자|2024/06/22 15:57
2024년 한마음선원 대행선연구원 제8회 학술대회 모습. 대행선연구원은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근현대 비구니의 삶과 수행'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사진=황의중 기자
대행·수인·수옥·장일스님 등 근현대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비구니 선지식(善知識·도를 가르쳐줄 수 있는 스승)들의 삶과 수행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비구 선지식에 대한 기록은 많이 전해지고 있으나 비구니 선지식에 대한 조명은 덜된 편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비구 큰스님들만큼 훌륭한 비구니 선지식들을 후대에 알리고 이분들의 사상을 선양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 산하 대행선연구원은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제8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근현대 비구니의 삶과 수행-자료발굴과 기록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열렸다. 한마음선원 이사장 혜수스님, 한마음선원 안양본원 주지 혜솔스님, 대행선연구원장 혜선스님,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장 광용스님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또한 행사는 한마음선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혜수스님은 환영사를 통해 "출가자가 줄고 승가 양성을 위해 승가 교육이 필요한 시대"라며 "대행선연구원은 비구니 선사들의 기록을 찾아 정리하며, 영구히 연구 논문을 남겨 세상에 알리는 데 한몫하겠다"고 밝혔다.

광용스님은 축사를 통해 "근현대 비구니 선사들의 삶과 수행을 보면 제자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중요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중요했던 자료나 수행 기록은 버려지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비구니 선지식의 중요한 기록이 세상에 나와 영구적인 기록물이 될 수 있도록 대행선연구원에서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학술대회는 5개의 주제 발표와 논평, 토론으로 진행됐다. 학술대회 논평자로는 서광스님(동국대)과 정완스님(동국대)을 비롯해 하춘생(동국대)·김종진(동국대)·윤종갑(동아대) 교수가 참여했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보현정사 주지 경조스님은 '수인스님의 수행, 사상 그리고 실천'을 주제로 삼았다. 성월당 수인스님(1899~1997)은 운문사 초대 주지를 맡아 현재의 운문사를 만드는데 초석을 다진 선지식이다. 99세에 원적에 들기까지 누구나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정중하게 대해 법화경 속 '상불경 보살'로 불릴 정도였다. 경조스님은 "운문사가 지금 비구니 사찰도량으로 정착하는 데 수인스님의 공이 컸다"며 "그럼에도 이러한 기록이 잘 남아있지 않다. 승가교육이 절실한 시점에서 수인스님을 검토하고 되살려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삼선불학승가대학원 교수 원과스님은 비구니계 3대 강백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화산당 수옥스님(1902~1966)을 조명했다. 법희스님을 은사로 정혜사 견성암에서 출가한 수옥스님은 1918년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3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오사카 호주지(寶林寺), 기후현 텐이지(天衣寺)·미노니슈카쿠린(美濃尼衆學林)에서 수학했다. 1941년 귀국 후에는 남장사 관음강원, 보문사 보문강원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6·25한국전쟁 이후 1955년 양산 내원사 주지로 부임해 1959년 동국제일선원을 개원했다.

원과스님은 '비구니 수옥과 경봉선사의 한시 교유'를 통해 수옥스님의 친필 노트인 '도가한화'를 근거로 1957년 4월부터 1965년 10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이뤄진 경봉선사와의 한시 교유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두 스님의 한시 교유는 수옥스님이 지병으로 입적할 때까지 이뤄졌다. 원과스님은 "선객을 지도하는 경봉 대선사와 자신의 안목을 공유할 만큼 수옥스님도 선사상에 대한 이해와 참선 체험이 선행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국대 선학과 박사인 여현스님은 '도림당 장일의 수행과 호법활동'을 통해 불교정화운동에 앞장섰던 선지식 도림당 장일스님(1916~1997)을 소개했다. 장일스님은 철저히 경전 중심의 수행을 강조했다. 그는 "스님들의 말은 믿지 못하고 불설만 믿을 수 있다"며 능엄주 수행에 대한 경전적 근거를 성철스님에게 추궁할 정도였다.

여현스님은 "독립운동가 집안답게 장일스님은 도를 깨쳐 얻은 힘으로 나라를 독립하고 호국선열을 위로하는 것을 출가 목표로 삼았다"며 장일스님이 불교정화운동과 각종 불사에 힘쓴 것은 이러한 대국적인 정신세계가 밑바탕이 됐다고 분석했다. 여현스님은 장일스님의 활동이 한국 비구니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동화사의 대처·비구 정화 역사를 설명했다.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 의현스님은 실제로 "비구들이 동화사를 차지하고 따뜻한 방에서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던 것이 장일의 덕인 줄 알라"고 상좌들에게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비구니 선지식을 다루는 행사인만큼 한마음선원 창건주 묘공당 대행스님(1927~2012)에 대한 논문 발표도 있었다. 최원섭 대행선연구원 연구원은 '대행스님의 진실과 방편의 중도'를 통해 "대행선사의 방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일상 언어로 이뤄지는 법문"이라고 짚었다. 또한 대행스님이 '참선이 바로 생활'이라고 강조하는 것에 대해 최 연구원은 "'일상이 바로 선'이라는 관점은 대행선사만의 특징은 아니다. 현실을 중시하는 중국불교 선종의 기치가 '일상의 모든 것이 선'이었다"면서 "독자적으로 보인 대행선은 역설적으로 선종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행스님에게는 방편과 진실은 '하나'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진영 아메리칸대 교수는 '한국불교의 사회 참여 새로운 모습-대행스님의 경우'를 통해 미국에서 활동했던 신학자 이정용(1935~1996) 교수의 '주변인' 이론과 연계해 대행스님의 활동을 해석했다. 종교는 권력과 지위의 중심에 대한 동경과 갈망 있어서는 안 되며 중심으로부터의 해방을 열어줘야 한다는 게 이정용 교수의 주장이었다. 박 교수는 "대행스님은 아무것도 없이 깨친 분이기에 힘없는 존재인 주변인과 공감했다"며 "이원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주변부의 시선에서 세상과 중생을 보는 게 대행스님의 선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대행스님의 선사상을 기리며 불교학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논문을 발굴하는 묘공학술상 제6회 시상식도 진행했다. 이번 회에서는 대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중앙승가대 강사 지월스님과 대진대 김태수 연구교수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함께 진행한 제6회 묘공학술장학생에는 박소은(독일 함부르크대 석사과정)·박훈(동국대 박사과정)씨가 선정됐다.

환영사하는 한마음선원 이사장 혜수스님./사진=황의중 기자
보현정사 주지 경조스님은 '수인스님의 수행, 사상 그리고 실천'을 주제로 발표했다./사진=황의중 기자
화산수옥스님에 대한 발표를 한 삼선불학승가대학원 교수 원과스님./사진=황의중 기자
'근현대 비구니의 삶과 수행' 학술대회 모습./사진=황의중 기자
도림당 장일스님에 대해 발표한 동국대 박사 여현스님./사진=황의중 기자
도림당 장일스님의 수행과 호법활동에 대한 발표./사진=황의중 기자
최원섭 대행선연구원 연구원이 대행선사의 방편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황의중 기자
대행스님의 사례를 통해 한국 불교의 사회 참여를 논한 아메리칸대 박진영 교수./사진=황의중 기자
정운스님을 좌장으로 주제 발표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사진=황의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