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설치느니 더위 피해서”… 북적이는 새벽 PC방·카페

| 르포 | 폭염에 집 밖 배회하는 시민들
올여름 30년만에 최장 열대야 발생
한 시민 "저녁내내 카페서 시간보내"
PC방서 화면 켠 채 엎드려 잠 자기도
기상청 "당분간 아열대 고기압 영향"

김서윤,대학생 인턴 기자|2024/07/30 17:58
30일 새벽 4시께 서울 강서구에 소재한 모 PC방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하거나 졸고 있다.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이 PC방의 총 90석 중 42석이 사용 중이었다. /김서윤 기자

30일 새벽 4시께 서울 강서구의 길거리는 푹푹 찌는 날씨와 귀를 찌르는 매미 소리가 어둠 속 적막을 깨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 자리한 PC방은 간판에서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 PC방은 총 90개 이용석 가운데 42석이 사용 중이었다. 좌석 곳곳에 모니터 화면을 켠 채 엎드려 잠을 청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PC방 손님 김모씨(23)는 "집에 에어컨이 한 대뿐이라 내 방까지 냉기가 충분히 닿지 않는다"며 "방학이기도 해서 동네 친구들을 불러 PC방에서 밤새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PC방 아르바이트생 이모씨는 "평소 야간 손님은 많아도 10명 남짓한 수준"이라며 "지난주부터 야간 시간 내내 30명 정도는 손님이 항상 차 있었다. 주말에는 새벽 시간 좌석 반 이상이 들어찬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새벽 4시 30분께 서울 마포구에서 강서구를 잇는 심야 시내버스도 21좌석 중 10곳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군복무 중 휴가 나온 친구와 음주 후 귀가하는 취업준비생 윤모씨(28)도 있었다. 윤씨는 "자취방이 좁아 밤새 에어컨을 켜두면 과하게 추운데 에어컨을 끄면 삽시간에 덥고 습해진다"며 "방에서 잠 설치며 에어컨으로 씨름할 바에 군인 친구 위로라도 잘 해주려고 아예 늦게까지 놀고 있다"고 말했다.
밤새 더위가 이어지는 열대야 현상으로 잠에 들지 못한 채 신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은 지난 21일부터 이날까지 밤사이 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 현상이 9일 동안 지속되고 있다. 지난 29일 새벽에는 강원 속초와 강릉 일대에서 밤새 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초열대야 현상'까지 발생했다.

기상청의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29일까지 발생한 열대야 일수는 총 7.7일로 동기간 발생한 열대야 일수로는 1994년(8.6일) 이후 30년 만에 가장 길었다.

대구도 이날 열대야가 발생해 일출 직전인 새벽 5시에도 기온이 25.9도를 기록했다.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김예련씨(52·여)도 "하루 종일 덥지 않은 때가 없어 초저녁부터 에어컨을 틀어두면 전기료 폭탄을 맞는다"며 "저녁 내내 카페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되며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 안에서 온도가 계속 상승하는 중"이라며 "이 때문에 열대야가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기상청은 올해 장마가 지난 27일을 기점으로 사실상 끝났으며 앞으로는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기상청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올해 장마는 지난 27일 사실상 종료됐다"며 "태풍에 의한 기압계 변동성이 사라지고 우리나라는 당분간 아열대 고기압의 영향을 받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