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연의 오페라산책]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 ‘토스카’

"일본 오페라가 가진 막강한 저력 확인한 무대"

전혜원 기자|2024/07/31 10:49
일본 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 '토스카' 중 한 장면. ⓒRikimaru Hotta /신국립극장 도쿄
일본 신국립극장 도쿄(NEW NATIONAL THEATRE, TOKYO, 이하 신국립극장)의 2023-24 시즌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작품은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였다. 작곡가 푸치니 서거 100주기를 맞아 세계적으로 푸치니 오페라가 많이 공연되고 있는데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번 여름 방문기간 동안 많은 푸치니 오페라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지난 19일 신국립극장의 '토스카'를 보면서 크게 탄복했던 부분은 이 프로덕션이 무려 24년 전인 2000년에 초연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후 25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7번의 재공연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초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공연이라 하는데 그 프로덕션이 여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무대에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고전으로 분류되는 오페라를 공연하는 일은 악보와 대본을 수정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을 수 있으나 반면 그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원형이 보존되기 때문에 언제든 재현이 가능하고 원전 예술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신국립극장의 이번 '토스카'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이 프로덕션의 연출을 맡은 안토넬로 마다우 디아즈는 90년대에 우리나라의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도 연출한 바 있는 이탈리아 출신 연출가로 2015년에 고인이 됐다.
일본 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 '토스카' 중 한 장면. ⓒRikimaru Hotta /신국립극장 도쿄
무대는 매우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형태로, 호화롭기가 그지없었다. 1막 카바라도시가 '오묘한 조화'를 부르고 그림 작업을 하는 장면과 뒤에 이어지는 스카르피아의 아리아 '테 데움'이 나오는 장면에서 같은 성당 안에서 전환이 이뤄졌는데, 바로크풍 궁정 회화처럼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부한 공간과 의상을 볼 수 있었다. 2막과 3막 배경인 로마 파르네제 궁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프랑코 제피렐리 시대 스타일로, 요즘에는 이처럼 휘황찬란하게 공들인 무대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날은 모처럼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수를 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신국립극장의 캐스팅은 동시대 스타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떠오르는 신예 성악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특징이 있다. 이번 오페라의 두 주역도 이러한 특징을 엿보이는 것으로, 토스카는 소프라노 조이스 엘 코우리가 노래했고 카바라도시는 루마니아 테너인 테오도르 일리차이가 맡았다. 레바논계 캐나다인 성악가인데, 뛰어난 벨칸토 창법의 리릭 소프라노로 알려져 있다. 엘 코우리는 연기력 측면에서 밋밋한 모습을 보여 푸치니 오페라가 추구하는 연극적 디테일을 잘 살리지 못했으나, 가창에 있어서는 전성기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음색을 들려줬다. 일리차이는 독특한 색깔을 지닌 테너로 힘이 넘치면서도 애수가 느껴지는 음색으로 두 번의 아리아를 모두 잘 소화했다.

일본 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 '토스카' 중 한 장면. ⓒRikimaru Hotta /신국립극장 도쿄
바리톤 아오야마 다카시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음악적으로는 잘 표현했지만 다소 경직된 움직임으로 스카르피아의 악마적 모습을 부각하기에는 미흡했다. 원래 스카르피아는 조지아 출신의 니콜로즈 라그빌라바가 출연하기로 되어있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해 아오야마 다카시가 올랐다. 일리차이와 라그빌라바는 8월 말 우리 예술의전당 오페라 '오텔로'에도 각각 오텔로와 이아고 역할로 출연하기로 예정됐다.

마우리지오 베니니와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련되고도 유려한 선율로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현악의 섬세함, 하프의 서정성, 금관의 볼륨 등등 모든 파트가 적재적소에서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고 합창단의 탄탄한 연주력도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연출가 마다우 디아즈 뿐 아니라 이 오페라의 초연에 참여했던 스태프 몇몇도 이제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한 재공연을 통해 그들의 예술세계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회화나 문학, 음악 작품이 아닌 공연예술에서도 이 같은 재생과 지속이 가능하다는 것이 부럽게 한다. 몇몇 아티스트의 두드러진 기량만이 아닌 일본 오페라가 가진 막강한 저력을 확인한 공연이었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