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패싱·면죄부 논란… 우리銀 ‘이사회 무용론’

'부정대출 늦장보고' 금감원 비판에도
과점주주 이사회 "現경영진 책임은 부당"
임종룡 등 수뇌부 징계·제재조치 안해
안일한 대처에 과점주주 한계 드러나

특별취재팀 기자|2024/08/21 17:54

 

우리은행에서 180억원 횡령사고에 이어 350억원 부정대출이 발생한 가운데 이사회가 현 경영진 봐주기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해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것과 달리 우리은행 이사회에서는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쳐서다. 감독당국 수장이 작심발언을 했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임에도 이사회에서는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당시 금융위원장)은 2016년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민간 중심의 지배구조를 형성하겠다고 언급했다. 우리금융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말이 무색하게도 우리은행 민영화를 추진했던 임 회장이 우리금융에 온 이후 이사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정황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근 발생한 350억원 부정대출 등 중요 사안들이 이사회에 제때 보고되지 않는 등 패싱 의혹들도 잇따랐다. 게다가 문제가 불거진 후에도 현 경영진에 면죄부를 주면서 스스로 '이사회 무용론'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오전 열린 우리은행 이사회에서는 조병규 우리은행장 등 주요 경영진에 대한 제재가 논의되지 않았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한 사외이사는 "도덕적으로 잘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반성하지만, 이사들이 판단하기에 경영진에게까지 책임을 묻는다는 건 지나친 얘기일 뿐 아니라 부당하기까지 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횡령사고와 부정대출 등 은행에서 벌어진 대규모 금융사고를 두고 은행 내부와 이사회, 금융당국 간 온도차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의 늦장보고 등 안일한 처사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는 데 반해, 이사회와 은행 경영진은 심각성에 비해 징계나 제재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서다.

일례로, 우리은행 이사회가 이번에 발생한 부정대출 사건 보고가 이뤄진 시기는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진행되기 직전인 6월 말경이다. 우리은행은 올 1월부터 부정대출 관련 조사를 진행했는데, 보고 시기는 금감원이 개입하기 직전이었다. 늦장보고가 이뤄진 셈인데, 이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없었다.

2021년 은행연합회에서 개정한 '은행권 표준 내부통제 기준'에 따르면 이사회는 내부통제기준을 위반하거나 내부통제 취약부분에 대해 책임 있는 임직원에 대한 징계조치를 대표이사에게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 이사회는 횡령사고를 공식 안건으로 다루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발생 직후 예정돼 있던 정기 이사회에서 관련 이야기가 언급되는 수준에 그쳤다. 우리은행 이사회에는 과점주주 사외이사가 일부 포함돼 있음에도 문제 제기가 없었던 셈이다. 2022년 700억원 횡령에 이어 두 번째 대규모 횡령사고가 발생한 만큼,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사회에서 관련자에 대한 징계조치를 요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금융도 이달 중 이사회 개최를 예고한 상태다. 과점주주가 5명이 포함돼 있는 해당 이사회에서는 임 회장 등에 대한 질타가 나올지, 이사진이 부정대출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할지 여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우리은행 이사회의 의견이 다음 주 열리는 우리금융 이사회에도 똑같이 반영될지도 주목된다. 앞서 우리금융 이사회에는 최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350억원 부정대출에 대한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해에서 발생한 180억원 횡령사고 역시 경찰에서 조사를 시작한 이후에 우리금융 이사회에 보고가 이뤄졌다. 과점주주 사외이사 가운데 2명은 우리은행 이사회에도 몸을 담고 있는 만큼, 은행에서 보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우리은행 사외이사가 아닌 우리금융지주 이사들은 언론 등에 보도된 이후에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다.

우리금융은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과점주주 체제인 만큼 지주 이사회를 통해 과점주주들에게도 해당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횡령사고·부정대출 등 대규모 금융사고는 우리금융 이사회에도 보고가 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우리은행의 이미지를 깎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금융그룹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우리'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고 그에 따른 피(fee)를 내고 있다 보니 경영상의 큰 변동 사항이나 영향이 될 만한 것들은 보고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중요 사안이 보고되지 않으면서 경영진이 이사회를 패싱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우리은행에서 잇따라 내부통제 실패 사례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가운데 임 회장이 적극적으로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임종룡) 회장도 우리은행 경영 과정에서 내부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책임감 있게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우리은행뿐 아니라 우리금융 이사회에서 올해 다뤄진 안건과 관련, 반대의견이 나온 적이 없다. 과점주주 이사회임에도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과점주주 이사회 체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