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의 스포츠人] “프로 1, 2부에 도전할 것”

양현정 양평FC 감독
2000년 이영표, 김남일과 겨뤄 신인왕 수상

장원재 선임 기자|2024/10/03 18:00
양현종 양평FC 감독/ 사진=장원재 전문기자
부부 소방관, 부부 교수, 부부 법조인이 있다. 부부 축구감독도 있다. 양현정(47) K3리그 양평FC 감독과 송주희(46) WK리그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감독이다.

- 양평FC엔 언제 부임했나.

"올 1월이다."

- 2000년 K리그 신인왕이었다. 그때 김남일, 이영표, 이관우 등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쑥스럽다. 벌써 23년 여전 이야기다. 새 밀레니엄 첫해 시즌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서 부담감, 압박감이 많았다. 안양 LG의 이영표, 전북의 제가 끝까지 경쟁했다."
- 2000년 신인왕이었는데 프로로 뛴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멘탈적인 것, 마인드적인 부분에도 문제가 있었다."

- 무슨 말인가.

"아프기도 했지만, 치료를 잘하고 쫓기지 말고 차근차근 잘 준비해서 경기에 나가야 했다. 심정적으로 쫓기는데다 몸이 아프니 포기가 빨랐다. 끈기 있게 재활해서 복귀할 생각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 지도자 생활하는데 그 경험이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그래서 부상에서 복귀하는 선수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채찍과 당근을 많이 준다.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인식을 시키려고 노력한다."

- 무릎은 언제 다쳤나.

"그냥 계속 고질병이 좀 있었다. 초중고 대학까지 10년 동안 쉼없이 경기를 뛴 영향도 있다. 청소년 대표, 올림픽 대표도 했으니 운동량이 많았다."

- 전북 당시 멤버가 쟁쟁했다.

"투톱이 박성배, 김도훈 감독님, 수비에는 최진철 감독님이 있었다."

- 2000~2002년까지 32, 23, 25경기를 뛰었는데 2003년은 1경기 출장이 전부다. 리저브팀에서 성적이 좋아 불러 올렸더니 본인이 거부했다는 루머가 있다.

"그걸 어떻게 아시나. 조윤환 감독님 계실 때인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선수는 좀 겸손하고 싫은 것도 묵묵히 따라가야 한다. B팀에서 골 넣고 잘하니 다음 날 올라오라고 했는데, 제가 몸이 아프다고 핑계대면서 안 올라갔다."

- 왜 거부했나.

"속된 말로 '꼬라지'가 난 거다. 선수는 1분을 뛰든, 5분을 뛰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2003 시즌은 제 인생에 제일 아쉬운 시절이다."

- 정신적으로 흔들렸나.

"그렇다. 그런 걸 극복해서 한 단계 더 올라서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것이다. 저는 선수 시절에 잘못된 멘탈과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 국가대표 경기도 3경기 출전했다. 기억하나.

"1998년 태국에서 열린 킹스컵에 나갔다. 차범근 감독님이 뽑아주셨다. 제가 크로싱도 잘 올렸고, 어린 나이지만 왼발잡이로 측면에서 좀 당돌하게 플레이했다."

- 국가대표로 3경기만 뛰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나.

"많다. 2000년 신인상 인터뷰, 경기 최우수선수 인터뷰를 할 때 '프로 경기만 열심히 하겠다'라고 했는데, '만약 대표팀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죽어라고 뛰겠다'라는 식으로 말했어야 했다.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만큼 준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제가 그러지 못했다."

- 일본이나 유럽에서 제의는 없었나.

"있었다. 해외로 가는 것이 목표였기에, 열심히 노력했다.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 전북이 자매결연 맺은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도 얘기가 있었다. 시미즈와는 AFC 경기할 때 제가 잘했다."

- 그런데 왜 못 갔나.

"시미즈와는 일본 국가대표 출신 정말 잘하는 선수와 맞트레이드 하자고 해서 틀어졌다. 그리고 제가 신인왕 받은 뒤 바로 다음 해였으니까 구단에서도 쉽게 유럽으로 보내줄 수 없었다."

- 축구인 부부로 유명한데 어디서 만났나.

"거듭 부상에 시달리다 2006년 베트남 호치민시티로 갔다. 한 경기도 못 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7년 풍생고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할 때 자격증을 따러 가서 만났다. C클라스 강습이었다."

- 송주희 감독은 축구 실력도 대단했지만, 미녀 선수로도 유명했다.

"미모도 최고였지만, 성격과 성향 자체에 반했다. 이 여자라면 제 인생을 올인해도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일 잘한 결정이다. 축구는 훈련도, 경기도 선택의 연속이라 선수들한테도 '선택을 잘하라'라고 얘기한다. 송주희 감독을 선택한 것이 제 인생 최고의 결정이다."

- 뭐라고 프러포즈 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 송 감독 팀이 2024 WK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아내에게 응원 말씀 부탁드린다.

"정규 리그 마지막 경기 수원 FC 위민과의 경기를 보면서 '이 고비만 넘기면 우승할 것 같다'라고 경기 끝나자마자 카톡을 남겼다. 정규 리그 우승팀 화천KSPO 강재순 감독님도 잘 아니까 축하드린다고 했다. 정규리그 3위 경주한수원이 수원을 이기고, 화천과 경주 두 팀이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가서 멋있는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

- 부부 사이에 전술 등 축구 얘기도 하나.

"전술 이야기는 잘 안 한다. 선수들의 멘탈적인 부분이나 마인드적인 부분, 선수단 운영 등에 대해서는 서로 소통한다."

- 2009년엔 동티모르 U-16 감독을 맡았다. 동티모르는 어떻게 가게 됐나.

"은퇴해서 풍생고에 있을 때다. 은사 고(故) 조관섭 감독님 친구 분이 동티모르의 히딩크 김신환 감독님이셨다. 김신환 감독님이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셔서 10년 넘게 봉사했다."

- 동티모르로 갔나.

"매년은 아니지만 자주 갔다. 동티모르 팀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제가 가르쳤으니까 정도 많이 들었다."

- 동티모르에 가서 느낀 점이 있다면.

"축구하려는 아이들은 정말 많은데 시설이나 환경이 열악했다. 그때 코이카에서 지원해줘서 동티모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1박 2일 축구교실도 했다. 축구교실은 전문선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봉사활동이다."

- 한국 환경과 비교가 많이 되나.

"재능있는 선수들이 너무 많았는데, 잘 먹지 못하고 생계도 자기가 꾸려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재능들이 축구를 접어야 해서 안타까웠다. 귀국해서 대한민국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 어린 선수들은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지난 9월 29일 K3 양평 FC : 포천 FC의 경기. 양평이 1-0으로 이겼다. / 제공=전형찬
- 3부리그에서 제일 어려운 점은.

"제가 욕심이 좀 많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선수들이 지금보다 더 절실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1부 2부로 갈 수 있게끔 조금 더 준비를 잘하면 좋겠다. 잘하는 선수들은 안주하고, 경기를 못 뛰는 선수들은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저도 현역 시절 비슷한 마인드를 가졌기에 할 말은 없지만, 그런 부분들이 좀 많이 아쉽다."

-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저희 선수진이 연령대가 어리다. 그래서 올해, 내년에 성장해서 프로로 갈 수 있도록 선수들을 길러내고 싶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먼 미래에는 하나하나 계단을 밟아서 프로 1부 2부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동남아 국가대표팀이라든지 아니면 크게 잡아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감독을 하는 꿈도 꾼다. 잘 준비해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겠다. 한번 실패하더라도 계속 도전하려고 한다."

▲ 양현정은
풍생고, 단국대를 나와 전북(2000~2003), 이천 상무(2004), 대구(2005), 수원시청(2008)에서 뛰었다. 2000년 K리그 신인왕이다. 2000~2002년까지 80경기에 출전했지만 이후 은퇴까지 4경기 출전이 전부다. 2008년 실업팀으로 복귀해 10경기를 뛰었다. 국가대표로는 1998년 3경기 출전 기록이 있다. 2007년부터 풍생고 감독, 동티모르 U16 감독, 괌 대표팀 코치, 광동고 감독 등을 역임했다. 2024년 1월부터 K리그3 양평 FC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양현정 감독(오른쪽)과 장원재 전문기자/ 제공=전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