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적 건축물 짓고파… 尹임기내 이승만기념관 끝내야”
[대담/김이석 논설심의실장-손병두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축위원장]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으로 확정
미군기지서 변모 역사적 상징성 커
대통령실·중앙박물관 등 인접
美 워싱턴보다 좋은 구도 기대감
논설위원실|2024/10/0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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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축위원장으로 기념관 건립에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중도우파 후보단일화 통합대책위원회'(통대위) 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교육감 우파 후보 단일화를 이뤄낸 손병두 전 전경련 부회장, 전 서강대 총장을 후보 단일화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김이석 본지 논설심의실장이 만나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과 후보단일화에 대해 들어봤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
- 전경련 상근부회장, 서강대총장, KBS이사장 등 경영인·교육자·언론인의 인생을 혼자서 다 사신 듯합니다.
회고해 보면 자기 뜻대로 되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의 모친이 여동생 조산 후 산후조리를 잘못해 제가 9살 때 돌아가셔서 양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고학을 하던 저는 의대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듬해 문과로 바꿔서 상대에 갔습니다. ROTC 장교로 전방부대 보병 소대장을 했는데 그게 리더십을 키우고 국가관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제 세례명이 가장 존경하는 성인인 '요한 보스코'인데 그 분을 닮고자 하는 소망대로 하느님이 제 삶을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열정을 불태우시게 된 계기는. 박정희 기념재단 이사장을 하셨던 것도 관련이 있는지요.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해 왔지만, 대학 1학년 신입생 때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나섰다가 총성에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던 후부터는 이승만에 대해서는 쳐다보지도 않았지요. 철이 들어 이승만 대통령이 저술한 책, '독립정신'과 그분에 대해 쓴 이주영 교수의 "이승만이 대한민국이다" 같은 책을 읽고 깨달았어요. "그분에 대해 완전히 엉터리로 알았구나! 이렇게 훌륭한 대통령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게 됐는데…"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터진 후 서울대병원에 다친 학생들 문병을 가서 이승만 대통령이 이런 유명한 말까지 남기셨지요. "나라가 위급하고 잘못됐을 때는 청년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
제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관여하게 된 것은 전경련 부회장 때입니다. 부회장 때 민간 모금 200억원, 정부 보조금 200억원 해서 400억으로 지어야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12년 걸려 지었습니다. 그 과정에 소송도 있었지만 아무튼 그걸 짓고 나니까, 전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이분들이 1시간 정도 보고 나면 완전히 달라졌어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책 출간과 세미나 개최와 비교할 수 없을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관람 후 나갈 때 어떤 사람은 모금함에 10만원을, 어떤 사람은 마음을 내면서, 우리가 쓰라는 것도 아닌데, 이런 소감문을 많이 써요. "독재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나?" 어린 학생들도 이렇게 감탄해요 “박정희라는 대통령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런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계셨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그분의 일생을 담은 기념관을 만들어 놓으니까 사람들이 와서 보고 나서는 그분의 공과를 알게 되는 거죠. 그걸 보고 기념관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차에 이승만 대통령도 우리 국민들한테는 잊혀진 인물, 그냥 잊혀진 게 아니라 완전히 역사왜곡이 마구 덮어씌워져 독재자, 부정선거를 저지른 부패한 정치가, 남북분단의 원흉, 한강을 폭파하고 도망간 사람으로 진실과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도 꼭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땅과 돈이 있어야 되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이버 공간에서는 땅도 허가도 필요 없고 돈도 그리 많이 들지 않으므로 일단 사이버 공간에 VR(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제대로 인식하게 만들자고 결심했습니다.
- 이승만 'VR(가상현실) 기념관'은 어떻게 추진됐습니까.
뜻 있는 이승만 연구자들, 친구들, VR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추진단을 만들었죠. 모금을 위해 기부자들에게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해 주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에 계좌를 열어달라고 부탁해 2021년 모금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7개관, 그중 7관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밝히는 '진실과 오해' 관으로 구성했습니다. 리얼 기능만 살리면 실제 기념관이 되도록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기획사로 제일기획에서 일하다 나온 사람들이 만든 ‘인스파이어’를 선정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들어와 공모전도 또 게임도 하는 젊은이들 놀이터로 VR기념관을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기념사업회 측 의견이 달라 두 달 동안 수정·보완해서 기념사업회 측에 다 넘겼죠.
개관 후 6개월 동안 6만 뷰(view)가 들어올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추진단이 모금한 계좌에 돈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보완한 부분에 대한 경비를 기념사업회 측에서 주지 않겠다고 나오는 바람에 분쟁에 휘말렸지요. 영세 협력업자들은 인건비를 안 주니 기획사를 고발하고, 기획사는 할 수 없이 기념사업회를 고발하게 돼 VR기념관 사업이 중단된 상태죠.
- 윤석열 대통령이 '실제 기념관' 짓겠다고 나서줘.
그런 경험을 통해 리얼 기념관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윤석열 대통령께서 정말 짓겠다는 겁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김황식 전 총리가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제가 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부지선정이 급선무였는데 제게 부지선정위원장을 하라고 해서 서울 시내 10군데를 검토했습니다.
- 용산으로 부지 선정을 하기까지.
처음 배제학당 옆 어린이공원이 떠올랐지만 현장 답사 결과 너무 비좁고 대형버스도 못 들어가는 곳이어서 다른 곳을 물색했습니다. 그 후 송현동이 떠올랐습니다. 그 땅은 이 왕조 땅이었지만, 미 대사관 직원들이 일본에 주재할 뿐 대한민국에 와서 근무를 안 하려고 하니까 이승만 대통령께서 미 대사관 측에다가 그 땅을 주고 거기에 집을 짓고 살도록 했지요.
그 땅은 경무대뿐만 아니라 중앙청, 이화장하고도 가까워 역사성도 높고 시내 한복판이어서 접근성도 좋고 또 서울시가 그 밑에 큰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것 등은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불교계가 반대했어요. 이승만 대통령이 1954년도에 불교 정화 사업을 할 때 대처승들이 다 하산했죠. 물론 이승만 대통령이 불교를 탄압하지는 않았습니다. 토지 개혁 때 불교 소유 토지는 대상에서 면제해 주었지요. 이 대통령은 어릴 때 독실한 불교신자인 모친과 함께 절에 많이 다녔습니다.
거기다가 이승만 기념관, 이건희 기증관, 서울시 지하 주차장이 동시에 착공돼야 빨리 진행되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우리의 목표는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짓는 것인데 별 진척 없이 6개월, 1년이 그냥 지나가버리니. 귀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보고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부지를 용산 중앙박물관 옆으로 확정했지요.
- 용산 부지의 상징성과 의미.
미군이 토지를 전부 반환하면 100만평 되는 용산 부지에 마침 대통령 집무실이 있고, 중앙박물관 바로 동쪽에 이승만 기념관이 있게 됩니다. 앞으로 상암동 구석에 있는 박정희 기념관까지 여기로 오면, 동서에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이 있고 건너편에는 현충원이 있게 되지요. 이는 마치 미국의 워싱턴 D.C.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건국 대통령 워싱턴의 정신, 연방 국가를 만든 링컨의 정신, 제퍼슨의 헌법을 쓴 정신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좋은 스승들이 옆에 지켜보고 있는데 대통령이 제대로 할 거 아니겠어요? 앞으로 우리 대통령도 딱 그럴 겁니다.
이미 용산에 전쟁기념관 있지, 중앙박물관, 한국박물관, 가족공원이 있지. 이승만·박정희 기념관이 들어서 어울리면 이거 완전히 역사문화공원이 되지요. 워싱턴보다 훨씬 좋은 구도가 생기는 거죠.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어떻게 이렇게 번영하게 됐는가?" 의문을 품고 대답을 얻으려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들어봐야 하잖아요. 이런 훌륭한 대통령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 됐다는 걸 외국인들이 알게 되겠지요.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K-팝 K-컬처 말고도 K-리더십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지요.
- 남은 과제.
부지가 확정되면서 부지선정위원회는 없어지고 건축위원회가 만들어져 이제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 땅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허가 조건을 맞추는 문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처리되기 때문에 행정안전부 허가를 받는 문제 등 행정적으로 밟아야 할 절차들이 많거든요.
건축위원회는 세계건축사적으로도 뛰어난 건물을 짓고 싶어요. 시공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시공 능력이 있으니까, 설계는 세계적인 설계자들의 공모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행정적인 문제, 설계 문제 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건축위원회에는 이승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명감을 갖고 모여 있는데, 우리나라 건축의 대가 여덟 분도 운영위원으로 위촉했습니다. 그분들이 중심이 돼 이끌어갈 겁니다. 그런 단계에 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