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사모펀드 사태] 정부도 개입 시사…고려아연,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우위 점하나

안덕근 장관 "국가핵심기술 해당 여부 적극 검토"
국가핵심기술 지정 시 MBK의 재매각 조건 불리
양측 공개매수가 상향전에…자금 부담까지 이중고

김한슬 기자|2024/10/08 15:18
안덕근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송의주 기자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 사태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고려아연의 전구체 기술을 두고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고려아연이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으로 거듭날 시 재무적 투자자인 MBK로서는 재매각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경영권 확보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 여론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고려아연 역시 핵심 기술 유출 우려를 강조하며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모양새다.

8일 산업계에 따르면 안 장관은 지난 7일 진행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이 보유한 전구체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법령에 따라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양측 분쟁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고려아연의 제련 기술 중요성을 인지한 만큼 개입할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앞서 고려아연은 영풍·MBK 측이 경영권을 가져갈 경우 자사 핵심 기술이 중국 등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에 지난달 26일 자사의 이차전지소재 전구체 관련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산자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지난 4일 고려아연 기술이 국가 첨단전략기술 및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심의했다. 심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이번 안 장관의 발언에 따라 국가핵심기술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최근 고려아연은 영풍·MBK의 적대적 M&A가 곧 노조 반발과 온산제련소의 핵심인력 이탈로 이어져 반도체 산업에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산제련소는 국내 최대 고순도 황산 생산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연간 140톤의 황산을 공급하고 있다. 이처럼 고려아연이 산업계 후방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가 관여할 여지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이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으로 지정될 경우, 사모펀드인 MBK로선 경영권 싸움에 불리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은 외국 기업으로부터 인수합병(M&A) 시 경제안보상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즉, MBK가 고려아연을 사들이더라도 향후 국내 기업에 한정해 재매각할 수 있어 이익 추구 행위에 상당 부분 제약이 있을 예정이다.

더욱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와 영풍정밀의 대항공개매수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MBK 측 자금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앞서 양측은 고려아연과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를 각각 83만원, 3만원으로 제시한 상태다. 이번주 중으로 고려아연이 영풍정밀의 공개매수가를 상향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맞불 작전을 놓던 MBK 역시 추가 상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MBK는 고려아연의 최초 공개매수 가격을 66만원으로 제시할 당시, 1조9000억원가량의 인수금액이 필요했지만 현재 83만원으로 상향하면서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해졌다. 향후 80만원 후반대로 재상향 시, 수천억원의 자금을 더 지출할 수도 있다. 반면 고려아연은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자기주식 공개매수에 총 3조1000억원을 투입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황이 점차 자금을 직접 끌어오는 MBK에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고려아연이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이 될 경우, MBK는 경영권을 사들이는 것이 이득일지 다시 한번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