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ASML의 ‘어닝 쇼크’… ‘반도체 겨울설’ 재점화

3분기 장비 수주액 전분기 반토막
삼성·SK하이닉스 등 관련주 휘청
"내년 글로벌 업황 부진 예고" 분석

정문경 기자|2024/10/16 17:55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로 통하는 네덜란드 ASML이 지난 3분기 '어닝 쇼크'를 냈다. 3분기 장비 수주액이 26억 달러로 시장 기대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노광 장비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회사다. 이 회사의 장비 수주가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단 소식에 국내외 반도체 기업 주가는 일제히 출렁였다. AI 칩 수요로 잠잠해지던 '반도체 겨울론'이 다시 점화되는 분위기다.

ASML은 16일(현지시간) 지난 3분기에 순매출 74억6700만 유로, 당기순이익 20억7700만 유로를 각각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순매출은 전분기 대비 19.6%, 당기순이익은 31.6% 증가했다. 크리스토퍼 푸케 ASML CEO는 "3분기 순매출이 전망치를 상회하는 결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3분기 장비 수주 성적이 문제였다. 3분기 장비 수주액은 26억3300만 유로로 전분기의 55억6700만 유로 대비 절반에도 못 미쳤다. 3분기 장비 수주액이 53억9000만 유로에 달할 것이라는 블룸버그 등 시장 예상치도 한참 밑돌았다. 특히 3분기 실적 지표가 하루 전인 전날(15일) 웹사이트에 실수로 게시되면서 반도체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ASML 주가는 유럽 증시에서 16.26% 폭락했으며 미국 증시는 물론 16일 개장한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다.
ASML은 내년 매출 전망도 낮췄다. 2025년 연매출 전망치를 기존 300억~400억 유로에서 300억~350억 유로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메모리 분야에서 인공지능(AI) 서버 수요가 강하지만, 기존 메모리반도체 메인 시장인 PC, 스마트폰 등 세트 수요 회복이 예상보다 느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푸케 CEO는 "AI 분야에서 강력한 발전과 상승 잠재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소비자 등) 다른 시장은 아직 회복이 더딘 것으로 보인다"며 "로직 분야에선 일부 고객사의 신규 노드 램프업 속도가 둔화되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쪽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초점을 맞추느라 설비 용량 추가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번 ASML의 수주 실적 급락 배경으로 미국의 노광장비 중국 수출제한 조치, 파운드리 분야 투자지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

파운드리 분야 투자 지연도 주된 요인이다. 올 초만 해도 2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에 필수 장비로 꼽히는 하이(High)-NA EUV 장비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으나 최근 파운드리 주요 기업들이 투자 속도를 늦추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이번 ASML 장비 수주 부진이 내년 글로벌 반도체 업황 부진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HBM 등 AI 반도체 쪽만 특수를 누릴 뿐 나머지 분야는 부진하다는 지적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코로나 팬데믹 때 태블릿, PC 등 세트와 자동차 반도체 수요가 늘었지만, 이후 현재는 반도체 시장의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며 "AI 서버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는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4~5% 수준으로 시장에서 큰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