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년의 잡초이야기] 바랭이

논설심의실|2024/10/17 18:06
바랭이
어느 풀이든 이름이 제아무리 멋져도, 특별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도 잡초로 분류되는 순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그중에서도 잡초 '바랭이'는 대표적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풀이다. 땅을 기어다니며 마디마다 번식하는 바랭이는 농민과 정원을 가꾸는 이들에게는 제1의 공적(公敵)이다. 바랭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원성을 사고 있는 잡초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어 '세계 최악의 잡초 1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어렸을 적 바랭이는 참 고마운 존재였다. 들판에 나가 소에게 풀을 뜯길 때 소들은 바랭이를 유독 좋아했다. 바랭이가 수북한 곳이 눈에 띄면 마치 횡재를 한 것처럼 신이 났다. 소는 빵빵하게 배를 불릴 것이고, 아버지는 소를 몰고 귀가한 나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칭찬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바랭이의 또 다른 이름은 '우산풀'이다. 바랭이 꽃이삭으로 우산놀이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에도 바랭이 우산을 만들어 노는 아이들 사진을 접할 수 있어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가축의 사료로, 밭의 퇴비로, 대기근 시절에는 인간들의 먹거리로 자연계에 기여해 온 바랭이는 선조들에게 참 친근한 풀이었던 것 같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그림 여러 곳에 바랭이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겸재 정선의 초충도와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연꽃 그림에도 어김없이 바랭이가 등장한다. 볼품없는 바랭이가 어떻게 그 귀한 그림들의 소재로 선택이 되었을까. 아마도 바랭이의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에 대한 찬미(讚美)의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만화가·前 중앙선관위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