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일담] ‘상생’ 외친 금융권…건전성 핑계로 우산 뺏진 말아야
유수정 기자|2024/11/11 06:00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연이은 당부가 무색해진 실정입니다. 그간 상생을 방패막이로 이자 장사 비난을 피해갔던 금융권의 행보가 단발적 움직임에 그친 까닭이지요.
실제 1년여 전 우리카드가 내놓은 2200억원 규모의 상생 방안과 한화생명이 출시한 상생 보험 상품 및 취약계층 케어 프로그램, 은행권 공동 2조원+α 규모의 민생금융지원방안책 등에 뒤이어 이렇다 할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선정해 발표 중인 '상생·협력 금융 신(新)상품'을 살펴보면 실질적 지원 확대보다는 상생을 가장한 듯한 상품이 대거 눈에 띕니다. 청년층(만19세~39세)을 대상으로 결혼 및 출산, 다자녀 등의 조건을 달아 고금리를 제공하는 적금 및 저축성 보험 등의 상품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지요.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는 60세 이상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한 적금 상품도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금융 취약계층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운 이들입니다.
그러나 막상 국내 산업의 근간이자 금융사의 주요 고객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 현상으로 한계기업이 속출하고 있지만, 금융사들은 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이들에 대한 대출 확대 등 지원책 마련을 꺼리고 있습니다. 기업금융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앞다퉈 경쟁하면서도,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뒷전에 두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할 뿐입니다.
오죽하면 '상생금융지수' 도입까지 논의될까요. 최근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중소기업에 대한 상생 협력 실적을 평가하는 '상생금융지수'의 도입을 촉구했습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역시 일부 은행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며 이 같은 의견에 힘을 더했습니다.
금융사가 단기적 건전성 개선을 위해 중소기업에 '비 올 때 우산 뺏기' 식으로 대응한다면 중장기적 건전성에 부정적인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복현 원장의 우려는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닐 겁니다.
중소기업은 국내 은행 전체 여신의 4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업권입니다. 은행뿐 아니라 카드, 보험사 등에도 주요 고객이지요. 이는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금융사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의 방증입니다. 이에 금융사들이 중소기업을 건전성 악화의 주범으로 몰기보다는 동반자로 인식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길 기대해봅니다.